보트 위의 세 남자
Jerome K. Jerome
제1장
병자 셋—조지와 해리스의 고통—치명적인 병 백일곱 가지를 앓는 사람—요긴한 처방—아이들의 간 질환 치료법—우리는 과로했으며 휴식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다—출렁이는 바다에서 일주일?—조지, 강을 제안하다—몽모랑시가 이의를 제기하다—찬성 셋, 반대 하나로 원안 가결.
우리는 넷이었다—조지와 윌리엄 새뮤얼 해리스, 나, 그리고 몽모랑시. 내 방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물론 건강이 형편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같이 몸이 영 개운치 않았고, 그 때문에 제법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해리스는 가끔씩 엄청난 어지럼증이 몰려와 뭘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라고 했다. 그러자 조지도 어지럼증이 있다며, 조지 역시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 경우에는 간에 탈이 났다. 간에 탈이 났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마침 시판 간장약 광고 전단을 읽은 참이었는데, 거기에는 간에 탈이 났을 때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증상이 자세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 증상이 하나도 빠짐없이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시판약 광고를 읽을 때마다 거기서 다루는 병을 가장 지독한 형태로 앓고 있다는 결론에 어김없이 이르고 만다. 어느 경우든 거기 적힌 진단은 내가 지금껏 느껴본 온갖 증세와 정확히 들어맞는 듯하다.
언젠가 가벼운 병이 조금 도져 그 치료법을 찾아보려고 대영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아마 건초열이었을 것이다. 책을 꺼내 읽으러 온 대목을 다 읽고 나서, 무심코 책장을 뒤적이다가 이런저런 병에 관해 느긋하게 읽기 시작했다. 맨 처음 빠져든 병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었다—끔찍하고도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역병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그런데 “전조 증상” 목록을 절반도 훑어보기 전에 내가 영락없이 그 병에 걸렸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동안 공포에 얼어붙어 앉아 있다가, 절망 끝에 아무 의욕도 남지 않은 채 다시 책장을 넘겼다. 장티푸스가 나왔다—증상을 읽었다—나도 장티푸스에 걸렸고, 그것도 모른 채 몇 달은 앓았음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또 무슨 병에 걸렸을까 궁금해졌다. 성 비투스 무도병을 찾아보았다—예상대로 그것도 앓고 있었다—내 병세가 점점 흥미로워져 철저히 파헤쳐보기로 하고 알파벳순으로 읽기 시작했다—학질을 찾아 읽고는 그 병도 막 시작되는 중이며 앞으로 이 주쯤 지나면 급성기에 접어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브라이트병은 가벼운 형태로만 앓고 있었으므로, 그 병만 놓고 보면 몇 년은 더 살 수 있었다. 콜레라는 심한 합병증까지 있었고, 디프테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앓아온 듯했다. 알파벳 스물여섯 글자를 따라 성실하게 끝까지 읽고 보니, 내가 걸리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병은 하녀 무릎병뿐이었다.
처음에는 이 점이 좀 섭섭했다. 어쩐지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왜 나는 하녀 무릎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왜 꼭 이것만 빼놓고 차별하는 것일까? 하지만 얼마 지나자 욕심이 누그러졌다. 약학에 알려진 다른 모든 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에 이기심을 좀 버리고 하녀 무릎병은 없는 대로 지내기로 했다. 가장 지독한 단계에 이른 통풍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덮친 모양이었고, 발효병은 어려서부터 앓아온 것이 분명했다. 발효병 뒤에는 더 나오는 병이 없었으므로, 그 밖에 다른 이상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의학적으로 얼마나 흥미로운 증례인가. 의대 수업에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큰 수확이겠는가! 내가 있으면 학생들은 “병원 순회 실습”을 할 필요도 없을 터였다. 나 하나가 곧 병원이었다. 내 주위를 한 바퀴 돌기만 하면 됐다. 그러고 나서 졸업장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스스로 진찰을 해보려 했다. 맥을 짚었다. 처음에는 맥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듯했다. 시계를 꺼내 시간을 재보았다. 내 계산으로는 분당 147회였다. 심장이 뛰는지 느껴보려 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심장이 멎은 것이다. 그 뒤로는 심장이 그때도 줄곧 제자리에 있었고 뛰기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어째서 그랬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허리라고 부르는 곳에서 머리까지 몸 앞쪽을 샅샅이 두드려보고, 양옆으로도 조금 돌아가며 두드리고 등도 조금 올라가며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혀를 살펴보려 했다. 최대한 길게 혀를 내밀고 한쪽 눈을 감은 채 다른 쪽 눈으로 살펴보았다. 보이는 것은 혀끝뿐이었고, 거기서 얻은 소득이라고는 성홍열에 걸렸다는 확신이 전보다 더 굳어진 것뿐이었다.
나는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그 열람실에 걸어 들어갔다. 나올 때는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폐인이 되어 기어나왔다.
나는 늘 진찰을 받던 의사를 찾아갔다. 오랜 친구인데, 내가 병이 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맥을 짚고 혀를 살펴보고 날씨 이야기를 해주는 일을 모두 공짜로 해준다. 그래서 이번에는 찾아가서 내가 친구에게 좋은 일을 좀 해주기로 했다. “의사에게 필요한 건 진료 경험이지.” 나는 말했다. “이 몸을 내주자. 한두 가지 병밖에 없는 평범하고 흔해 빠진 환자 천칠백 명을 보는 것보다 나 하나를 보는 편이 훨씬 많은 경험을 쌓게 해줄 거야.” 그래서 곧장 찾아갔더니 친구가 말했다.
“그래, 어디가 아픈가?”
나는 말했다.
“이 친구야, 내가 앓는 병을 일일이 늘어놓으며 자네 시간을 빼앗지는 않겠네. 인생은 짧으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네가 세상을 뜰 수도 있거든. 대신 내가 무슨 병에 안 걸렸는지 말해주지. 나는 하녀 무릎병에는 걸리지 않았네. 왜 하녀 무릎병에 걸리지 않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안 걸린 건 사실일세. 하지만 다른 병은 전부 앓고 있네.”
그러고는 그 모든 병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친구는 내 입을 벌려 속을 들여다보고 손목을 움켜쥐더니, 내가 예상도 못 한 순간에 가슴을 쳤다—나는 그런 짓을 비겁하다고 본다—그러고는 곧바로 머리 옆면으로 나를 들이받았다. 그 뒤에 자리에 앉아 처방전을 쓰고, 접어서 내게 주었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처방전을 펴보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가져가 내밀었다. 약사는 읽어보더니 도로 돌려주었다.
그런 것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약사시죠?”
약사가 말했다.
“약사 맞습니다. 제가 협동조합 상점에 가족용 호텔까지 겸한다면 손님 뜻대로 해드릴 수도 있겠지요. 약사밖에 안 되다 보니 제약이 있군요.”
처방전을 읽어보았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쇠고기 스테이크 1파운드와 비터 맥주 1파인트를
6시간마다 복용할 것.
매일 아침 10마일 걷기 1회.
매일 밤 11시 정각에 취침 1회.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머릿속을 채우지 말 것.”
나는 지시대로 따랐고, 다행히도—내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목숨을 건져 지금도 살아 있다.
다시 이번 일, 그러니까 간장약 광고 전단으로 돌아가자면, 내게는 틀림없이 거기 적힌 증상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일에 전반적으로 의욕이 없음”이었다.
이 때문에 내가 겪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 병에 시달려왔다. 소년 시절에는 이 병에서 놓여나는 날이 거의 하루도 없었다. 그때는 내 간 때문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의학이 지금보다 훨씬 덜 발달했던 터라, 다들 게으름 탓으로 돌리곤 했다.
“이런, 꾀만 피우는 꼬마 악마 같으니! 일어나 밥값이라도 좀 못 하겠니?” 다들 이렇게 말하곤 했다—물론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알약을 주는 대신 머리통 옆을 쥐어박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머리를 쥐어박히면 곧잘 병이 나았다—당분간은. 머리를 한 대 쥐어박히는 것이 요즘 알약 한 상자를 먹는 것보다 내 간에 훨씬 잘 들어, 더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당장 달려가 시키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간절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알다시피 흔히 그런 법이다—그런 소박하고 구식인 치료법이 약국에서 내주는 온갖 약보다 더 잘 듣는 때가 있다.
우리는 삼십 분 동안 앉아서 서로 자기 병을 설명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떤 기분인지 조지와 윌리엄 해리스에게 설명했고, 윌리엄 해리스는 잠자리에 들 때 어떤 기분인지 이야기했다. 조지는 벽난로 앞 깔개 위에 서서 밤중에 어떤 기분인지 솜씨 좋고 박력 있는 연기로 보여주었다.
조지는 병이 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조지는 실은 아무 데도 아프지 않다.
이때 포피츠 부인이 저녁 식사를 할 준비가 됐는지 물으려고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서로 처량하게 웃어 보이고, 조금이라도 넘겨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뱃속에 뭘 조금 넣어두면 병을 억누르는 데 도움이 되는 수가 있다고 했다. 포피츠 부인이 쟁반을 들여왔고, 우리는 식탁으로 다가앉아 스테이크와 양파를 조금, 그리고 루바브 타르트를 조금 깨작거렸다.
그때 나는 몹시 쇠약했던 것이 틀림없다. 처음 삼십 분쯤이 지나자 음식에 전혀 흥미가 없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내게는 드문 일이었다—게다가 치즈는 먹고 싶지도 않았다.
이 의무를 마친 우리는 잔을 다시 채우고 파이프에 불을 붙인 뒤 건강 상태에 관한 토론을 재개했다. 정확히 무슨 병에 걸렸는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병이—무슨 병이든 간에—과로 때문에 생겼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휴식일세.” 해리스가 말했다.
“휴식과 완전한 기분 전환일세.” 조지가 말했다. “머리에 무리가 가서 온몸의 기능이 저하된 걸세. 풍경을 바꾸고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지면 정신의 균형이 회복될 걸세.”
조지에게는 사촌이 하나 있는데, 경찰 조서에는 대개 의대생으로 기재되는 인물이다. 그러니 조지에게 집안 주치의 같은 말투가 좀 있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조지의 말에 동의하며, 소란한 군중을 멀리 떠나 한적하고 예스러운 곳을 찾아가 졸음에 잠긴 골목길 사이에서 햇살 좋은 일주일을 꿈결처럼 보내자고 제안했다—요정들이 소란한 세상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감춰둔, 사람들 기억에서 반쯤 잊힌 구석진 곳—세월의 절벽에 기묘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독수리 둥지 같은 곳, 그곳에서는 거세게 밀려드는 19세기의 파도 소리도 멀고 희미하게 들릴 터였다.
해리스는 그런 데서는 울적해질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어떤 곳을 말하는지 안다는 것이었다. 모두 여덟 시면 잠자리에 들고, 무슨 수를 써도 「레퍼리」 한 부 구할 수 없고, 담배를 사려면 10마일을 걸어가야 하는 곳 말이다.
“아니.” 해리스가 말했다. “휴식과 기분 전환을 원한다면 바다 여행만 한 게 없네.”
나는 바다 여행에 강력히 반대했다. 두 달쯤 할 거라면 바다 여행은 몸에 좋다. 하지만 일주일짜리라면 못 할 짓이다.
월요일에는 신나게 즐기리라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출발한다. 육지에 남은 친구들에게 가볍게 작별의 손을 흔들고, 가장 큰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쿡 선장과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하나로 합쳐놓은 사람이라도 된 양 갑판을 활보한다. 화요일이면 오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는 죽고 싶어진다. 토요일이면 쇠고기 국물을 조금 넘길 수 있고 갑판에 일어나 앉을 수도 있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이제는 좀 어떠냐고 물으면 창백하고도 다정한 미소로 대답한다. 일요일에는 다시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 고형식도 먹는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가방과 우산을 손에 들고 뱃전에 서서 육지에 내리기를 기다릴 때쯤이면 그 여행이 아주 좋아지기 시작한다.
내 인척 가운데 형제뻘 되는 사람이 한번은 건강을 위해 짧은 바다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런던에서 리버풀까지 왕복 선실표를 샀는데, 리버풀에 도착했을 때는 돌아오는 배표를 파는 데만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듣자니 그 표는 엄청나게 할인된 값으로 온 시내에 매물로 나왔고, 결국 낯빛이 누렇게 뜬 청년에게 18페니에 팔렸다고 한다. 마침 의사들한테서 바닷가에 가서 운동을 하라는 권고를 받은 청년이었다.
“바닷가라고요!” 내 친척은 다정하게 청년의 손에 표를 쥐여주며 말했다. “평생 볼 바다를 다 보실 겁니다. 운동은 또 어떻고요! 그 배 안에 앉아 있기만 해도 육지에서 공중제비를 넘는 것보다 더 운동이 된다니까요.”
정작 본인은—그 친척 말이다—기차로 돌아왔다. 자신에게는 노스웨스턴 철도도 충분히 건강에 좋다고 했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친구는 해안을 따라 일주일 동안 항해를 떠났는데, 출발하기 전에 급사가 와서 식사비를 그때그때 내겠느냐, 아니면 전부 미리 계산하겠느냐고 물었다.
급사는 훨씬 싸게 먹힌다며 후자를 권했다. 일주일 내내 먹는 데 2파운드 5실링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침에는 생선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구이 요리가 나온다고 했다. 점심은 한 시에 네 코스로 차려주었다. 저녁은 여섯 시로, 수프와 생선, 앙트레, 덩어리 고기구이, 가금류 요리, 샐러드, 단 음식, 치즈, 후식이 나왔다. 그리고 열 시에는 고기를 곁들인 가벼운 야식도 있었다.
내 친구는 그 2파운드 5실링짜리가 좋겠다고 생각했고(식성이 아주 좋은 친구다), 그대로 하기로 했다.
점심은 배가 시어니스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나왔다. 생각만큼 배가 고프지 않아서 삶은 쇠고기를 조금 먹고 딸기에 크림을 곁들여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 오후에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는데, 어떤 때는 몇 주째 삶은 쇠고기만 먹어온 것 같았고, 또 어떤 때는 몇 년째 딸기와 크림만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쇠고기도 딸기와 크림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모양이었다—어쩐지 불만이 있는 듯했다.
여섯 시가 되자 사람들이 저녁 식사 준비가 됐다고 알리러 왔다. 그 소식에 마음이 들뜨지는 않았지만, 그 2파운드 5실링 값을 조금이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밧줄이며 이것저것을 붙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사다리 아래에 이르자 양파와 뜨거운 햄에 튀긴 생선과 푸성귀가 섞인 기분 좋은 냄새가 반겨주었다. 그러고는 급사가 기름기 도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뭘 갖다 드릴까요, 손님?”
“여기서 저 좀 꺼내주세요.” 힘없는 대답이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친구를 위로 데리고 올라가 바람이 불어 가는 쪽에 기대 세워놓고는 그대로 두었다.
그 뒤 나흘 동안 친구는 얇은 선장 비스킷(얇다는 건 비스킷을 두고 하는 말이지 선장 말이 아니다)과 소다수로 소박하고 흠잡을 데 없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토요일이 가까워지자 좀 거들먹거리며 연한 차와 버터 바르지 않은 토스트에 손을 댔고, 월요일에는 닭고기 국물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화요일에 배에서 내린 뒤, 배가 증기를 뿜으며 선착장에서 멀어져 가자 아쉬운 눈길로 그 뒤를 바라보았다.
“가는구나.” 친구가 말했다. “저렇게 가는구나. 내 몫인데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 2파운드어치를 싣고 가는구나.”
친구는 하루만 더 주었더라면 본전을 뽑을 수 있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바다 여행에 단호히 반대했다. 내가 설명했듯이, 나 자신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뱃멀미를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조지가 걱정되었다. 조지는 자신은 괜찮을 것이고 오히려 좋을 것 같지만, 해리스와 나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둘은 틀림없이 멀미를 할 거라는 것이었다. 해리스는 사람들이 어떻게 바다에서 멀미를 하는지 늘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유난을 떠느라 일부러 그러는 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자기도 멀미를 해보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도무지 되지가 않더라고 했다.
그러고는 영국 해협을 건널 때 있었던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파도가 어찌나 거세던지 승객들을 침상에 묶어놓아야 할 정도였는데, 배에 탄 사람을 통틀어 멀미를 하지 않은 것은 해리스와 선장 단둘뿐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때는 멀미를 하지 않은 사람이 해리스와 이등 항해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해리스와 다른 남자 하나였다. 해리스와 다른 남자 하나가 아니면, 해리스 혼자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뱃멀미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육지에서는. 바다에 나가면 아주 심하게 앓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난다. 배마다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육지에서는 뱃멀미라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겪어본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배마다 우글거리는 그 수천수만의 멀미꾼들이 육지에 내리면 다 어디로 숨어버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내가 언젠가 야머스행 배에서 본 사람과 같다면, 이 수수께끼 같은 현상도 쉽게 설명할 수 있겠다. 사우스엔드 부두 바로 앞바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람은 둥근 선창 하나로 몸을 몹시 위험하게 내밀고 있었다. 나는 구해주려고 다가갔다.
“이봐요! 몸 좀 더 안으로 들이세요.” 나는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다 배 밖으로 떨어지겠어요.”
“아이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요.”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두고 와야 했다.
삼 주 뒤, 나는 바스의 어느 호텔 식당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항해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바다가 얼마나 좋은지 열을 올려 설명하고 있었다.
“뱃멀미를 안 하느냐고요!” 온순한 청년이 부러운 듯 묻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뭐, 저도 한 번은 속이 좀 안 좋았다는 걸 인정하지요. 혼곶 앞바다였어요. 이튿날 아침에 배가 난파했지요.”
나는 말했다.
“언젠가 사우스엔드 부두 근처에서 좀 비틀거리면서, 배 밖으로 던져졌으면 좋겠다고 하신 적 있지 않습니까?”
“사우스엔드 부두요?” 그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삼 주 전 금요일에 야머스로 가는 길이었지요.”
“아, 아—예.” 그 사람은 표정이 환해지며 대답했다. “이제 생각나는군요. 그날 오후에는 두통이 좀 있긴 했어요. 피클 때문이었지요. 제대로 된 배에서 먹어본 것 중에선 가장 형편없는 피클이었어요. 선생님도 좀 드셨나요?”
나로 말하자면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뱃멀미를 막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갑판 한가운데 서서 배가 들썩이고 앞뒤로 기울 때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늘 똑바로 선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뱃머리가 올라오면 갑판이 거의 코에 닿을 때까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선미가 올라오면 뒤로 젖힌다. 한두 시간이라면 이 방법도 아주 좋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균형을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조지가 말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세.”
맑은 공기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조용히 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 바뀌는 풍경 덕분에 머리가 심심할 틈도 없을 테고(해리스의 알량한 머리도 포함해서), 몸을 힘껏 쓰면 입맛도 좋아지고 잠도 잘 올 거라고 했다.
해리스는 조지가 평소보다 더 졸리게 만드는 일은 무엇이든 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하루는 24시간뿐인데 조지가 지금보다 어떻게 잠을 더 잘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더 잔다면, 차라리 죽어서 숙식비라도 아끼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해리스는 그래도 강 여행이라면 자기에게 티 하나 없이 딱 맞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티”가 뭔지 모른다(6페니짜리 티라면 안다. 거기에는 버터 바른 빵과 케이크가 ad lib로 딸려 나오는데,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다면 그 값도 싸다). 아무튼 누구에게나 잘 맞는 모양이니, 그 점은 높이 사줄 만하다.
내게도 티 하나 없이 딱 맞는 제안이어서, 해리스와 나는 둘 다 조지가 좋은 생각을 해냈다고 말했다. 그 말투에는 조지가 그렇게 분별 있는 생각을 내놓다니 뜻밖이라는 기색이 어딘지 모르게 담겨 있는 듯했다.
그 제안에 마음이 끌리지 않은 것은 몽모랑시뿐이었다. 몽모랑시란 녀석은 원래 강을 영 달가워하지 않았다.
“너희한테야 좋겠지.” 몽모랑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좋아하지만 나는 싫어. 난 할 일이 없잖아. 경치 구경은 내 취미가 아니고, 담배도 안 피워. 내가 쥐를 봐도 너희는 멈춰주지 않을 거고, 잠이 들면 배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날 물에 빠뜨리지. 내 생각을 묻는다면, 그거 다 망할 바보짓이야.”
하지만 우리는 셋 대 하나였고, 제안은 가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