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무공훈장
Stephen Crane
제1장
추위는 대지에서 마지못해 물러갔고, 걷히는 안개 사이로 언덕마다 길게 퍼져 쉬고 있는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풍경이 갈색에서 초록빛으로 바뀌자 군대도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리는 소문에 들떠 떨기 시작했다. 군대는 길고 질척한 진흙 구덩이에서 차츰 제대로 된 도로로 변해 가는 길들에 눈길을 주었다. 강기슭의 그늘 속에서 호박빛을 띤 강물이 군대의 발치에서 졸졸 흘렀다. 밤이 되어 강물이 서글픈 검은빛으로 변하면, 강 건너 먼 언덕의 낮은 이마에 박힌 적군의 모닥불이 붉은 눈처럼 빛나는 것이 보였다.
한번은 키 큰 병사 하나가 기특하게도 굳게 마음먹고 셔츠를 빨러 갔다. 그는 옷을 깃발처럼 휘두르며 개울에서 날듯이 달려 돌아왔다. 믿을 만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친구는 정직한 기병에게 들었고, 그 기병은 사단 사령부의 전령 가운데 하나인 믿음직한 자기 형제에게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붉은빛과 금빛으로 치장한 전령처럼 위엄을 부렸다.
“내일 이동한대—틀림없어.” 그가 중대 막사 사이 통로에 모인 병사들에게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강을 한참 거슬러 올라갔다가 가로질러 가서 놈들 뒤로 돌아가는 거야.”
귀 기울이는 청중에게 그는 눈부실 만큼 훌륭한 작전 계획을 큰 소리로 낱낱이 그려 보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푸른 군복을 입은 병사들은 나지막한 갈색 막사들 사이로 흩어져 삼삼오오 논쟁을 벌였다. 병사 마흔 명의 신명 나는 응원에 맞추어 건빵 상자 위에서 춤추던 흑인 마차꾼은 관객을 잃었다. 그는 시무룩하게 주저앉았다. 기묘한 모양의 수많은 굴뚝에서 연기가 한가로이 흘러나왔다.
“거짓말이야! 죄다 거짓말이라고—터무니없는 거짓말!” 다른 이등병 하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매끈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두 손은 토라진 듯 바지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을 자신을 모욕하는 처사로 받아들였다. “이 빌어먹을 군대가 앞으로 한 번이라도 움직일 거라곤 못 믿겠어. 우린 여기 눌러앉은 거야. 지난 두 주 동안 떠날 채비만 여덟 번을 했는데, 아직도 꼼짝을 안 했잖아.”
키 큰 병사는 자기가 꺼낸 소문이 사실임을 옹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목청 큰 사내는 그 일로 하마터면 싸움을 벌일 뻔했다.
상병 하나가 모인 사람들 앞에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돈을 잔뜩 들여 제 막사에 널빤지 바닥을 깐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른 봄에는 군대가 언제 행군을 시작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생활을 편하게 할 손질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곳이 일종의 영구 야영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많은 병사가 열띤 논쟁을 벌였다. 한 사람은 사령관인 장군의 모든 계획을 유난히 명쾌하게 설명했다. 다른 작전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맞섰다. 저마다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 댔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나서는 이도 많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동안 소문을 가져온 병사는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바삐 돌아다녔다.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무슨 일이야, 짐?”
“군대가 이동한대.”
“에이, 무슨 소리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뭐, 믿든 말든 네 맘대로 해. 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런 대꾸에는 곰곰 생각해 볼 만한 구석이 많았다. 그는 증거 따위는 내놓을 가치도 없다는 태도만으로 사람들을 거의 설득해 버렸다. 병사들은 그 일로 몹시 흥분했다.
한 젊은 이등병이 키 큰 병사의 말과 동료들의 갖가지 논평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행군과 공격에 관한 토론을 실컷 들은 뒤, 그는 자기 막사로 가 문 구실을 하는 구멍으로 몸을 요리조리 틀며 기어 들어갔다. 최근에 떠오른 새로운 생각들을 혼자 곱씹고 싶었다.
그는 방 한쪽 끝을 가로지른 널찍한 침상에 누웠다. 맞은편에서는 건빵 상자들이 가구 구실을 하고 있었다. 상자들은 벽난로 둘레에 놓여 있었다. 통나무 벽에는 삽화 주간지에 실렸던 그림 하나가 붙어 있었고, 소총 세 자루가 걸못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튀어나온 곳에는 손쉽게 집어 쓸 수 있도록 장구들이 걸려 있었고, 작은 장작더미 위에는 양철 그릇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접어 놓은 천막이 지붕 구실을 했다. 바깥에서 햇빛이 내리쬐자 천막은 옅은 노란빛으로 환해졌다. 작은 창문으로 한층 흰 빛이 비스듬한 네모꼴을 이루며 어수선한 바닥에 쏟아졌다. 불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이따금 진흙 굴뚝을 외면하고 방 안으로 구불구불 흘러들었고, 진흙과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만든 그 굴뚝은 막사 전체에 불을 붙이겠다고 끊임없이 으름장을 놓았다.
청년은 놀라움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드디어 싸우러 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일 전투가 벌어지고, 자신도 거기 끼게 될지 몰랐다. 한동안은 그 사실을 믿으려고 애써야 했다. 이 세상의 거대한 사건 하나에 곧 자기도 뛰어들게 된다는 조짐을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평생 전투를 꿈꾸어 왔다—막연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들, 그 거센 기세와 불길로 가슴을 설레게 하던 싸움들을. 환상 속에서는 숱한 싸움에 뛰어든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독수리처럼 눈 밝은 자신의 용맹이 드리운 그늘 아래 여러 민족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상상했다. 하지만 깨어 있을 때 그에게 전투란 과거의 책장에 찍힌 진홍빛 얼룩이었다. 마음속에 그리던 무거운 왕관이며 높다란 성과 함께 전투도 흘러간 시대의 것으로 묶어 놓았다. 세계사의 한 시기를 전쟁의 시대라 여겼지만, 그 시대는 오래전에 지평선 너머로 지나가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고향에서 그 젊은 눈으로 바라본 제 나라의 전쟁은 어딘가 미심쩍었다. 필경 일종의 놀이일 터였다. 그리스 영웅담 같은 싸움을 직접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진작 버렸다. 그런 싸움은 이제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더 선량해졌거나, 아니면 더 겁이 많아졌다. 세속 교육과 종교 교육이 서로의 목을 움켜쥐려는 본능을 지워 버렸거나, 아니면 탄탄한 재정이 격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입대하고 싶은 열망에 불타오른 적은 몇 차례 있었다. 대규모 군사 행동 소식이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꼭 호메로스의 서사시 같다고 할 수는 없어도, 거기에는 상당한 영광이 있는 듯했다. 그는 행군과 포위전과 교전 기사를 읽으며 그 모든 것을 간절히 보고 싶어 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머릿속에서는 색채가 터무니없이 현란하고 숨 막히는 무훈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그림들이 그려졌다.
하지만 어머니가 만류했다. 어머니는 그의 전쟁열과 애국심을 짐짓 좀 하찮다는 듯이 대했다. 태연히 자리에 앉아, 아들이 전장보다 농장에서 훨씬 더 요긴한 이유를 수백 가지라도 어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줄줄 댈 수 있었다. 그 문제를 말할 때 어머니가 쓰는 몇몇 표현에는 깊은 확신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 논쟁에서 어머니의 도덕적 동기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는 그 자신의 믿음마저 어머니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자기 야망의 빛깔 위에 드리워진 이 노란빛에 단호히 반기를 들었다. 신문과 마을의 소문, 자신의 상상이 그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흥분시켰다. 저 아래에서는 정말 멋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문에는 거의 날마다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바람결에 교회 종이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가 실려 왔다. 흥분한 누군가가 큰 전투에 관한 와전된 소식을 알리려고 미친 듯이 종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밤에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기쁨에 찬 이 목소리에 그는 황홀한 흥분으로 오래도록 몸을 떨었다. 나중에 그는 어머니 방으로 내려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저 입대할 거예요.”
“헨리,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 그날 밤 그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도 이튿날 아침 그는 어머니의 농장에서 멀지 않은 소읍으로 가서, 그곳에서 편성 중인 중대에 입대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얼룩 암소의 젖을 짜고 있었다. 다른 소 네 마리는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엄마, 저 입대했어요.”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빈다, 헨리.” 마침내 어머니가 대답하고는 다시 얼룩 암소의 젖을 짰다.
군복을 입고 문간에 섰을 때, 그의 눈에서는 흥분과 기대의 빛이 집과 가족을 떠나는 서운한 빛을 거의 압도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어머니의 상처 자국 남은 뺨에 눈물 두 방울이 자취를 남기며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방패를 들고 돌아오라거나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 그를 실망시켰다. 그는 혼자서 아름다운 장면을 그리며 마음의 준비를 해 두었다. 감동을 자아내는 데 쓸 만하다고 여긴 말 몇 마디도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은 그 계획을 무너뜨렸다. 어머니는 고집스레 감자 껍질을 벗기며 이렇게 말했다. “헨리, 조심하고, 이 싸움판에서 네 몸 잘 챙겨라—조심하고 네 몸 잘 챙기란 말이다. 처음부터 네가 반란군을 통째로 무찌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그럴 수 없으니까. 넌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작은 녀석 하나일 뿐이니,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해야 해. 네 성미는 내가 안다, 헨리.”
“헨리, 양말은 여덟 켤레 떠 놓았고, 셔츠도 네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걸로 다 넣었다. 우리 녀석이 군대의 누구 못지않게 따뜻하고 편히 지냈으면 하니까. 구멍이 나거든 곧바로 내게 보내라. 내가 기워 주마.”
“누구와 어울릴지도 늘 조심해서 골라라. 군대에는 나쁜 사내가 많단다, 헨리. 군대가 그자들을 거칠게 만드는 거야. 그자들은 너처럼 집을 떠나 본 적도 별로 없고 늘 어머니 곁에서 지낸 젊은 애들을 꾀어 내 술 마시고 욕하는 법을 가르치는 걸 제일 좋아하지. 그런 사람들은 멀리해라, 헨리. 헨리, 내게 알리기 부끄러운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저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라. 늘 그걸 마음에 새겨 두면 아마 바르게 지낼 수 있을 게다.”
“얘야, 네 아버지도 늘 잊지 마라. 아버지는 평생 술 한 방울 마신 적이 없었고, 모진 욕을 하는 일도 드물었다는 걸 기억해야 해.”
“헨리, 또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다만 얘야, 나를 생각해서 해야 할 일을 피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목숨을 잃거나 비열한 짓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가 오거든, 헨리, 옳은 일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요즘은 그런 일을 견뎌야 하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보살펴 주실 테니까.”
“양말하고 셔츠 잊지 마라, 얘야. 짐 꾸러미에는 블랙베리 잼도 한 컵 넣었다. 네가 그걸 무엇보다 좋아하는 걸 아니까. 잘 가라, 헨리. 몸조심하고, 착하게 지내거라.”
물론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이 고역이어서 그는 조바심을 냈다. 꼭 자기가 기대하던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는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그 말을 견뎠다. 막연한 안도감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대문에서 돌아보니 어머니는 감자 껍질 사이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쳐든 가무잡잡한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얼룩졌고, 여윈 몸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걸었다. 자기가 품었던 뜻이 문득 부끄러웠다.
집을 떠나서는 학교로 가 많은 학교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친구들은 놀라움과 감탄에 차서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는 이제 그들과 자신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느꼈고, 차분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그와 푸른 군복을 입은 몇몇 친구는 어느 날 오후 내내 온갖 특혜에 파묻힐 지경이었고, 그것은 무척 달콤한 일이었다. 그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활보했다.
머리칼이 옅은 빛깔인 소녀 하나는 싸움에 나서려는 그의 기세를 발랄하게 놀려 댔다. 하지만 머리칼이 더 짙은 또 다른 소녀가 있었고, 그는 그 소녀를 줄곧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의 푸른 군복과 놋쇠 장식을 보고 다소곳해지며 슬퍼하는 것 같았다. 참나무가 줄지어 선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다 고개를 돌리니, 소녀가 창가에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자 소녀는 곧 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세를 바꾸는 몸짓에서 그는 몹시 당황해 서두르는 기색을 보았다. 그는 그 일을 자주 생각했다.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서는 기분이 하늘을 날았다. 연대는 역마다 먹을 것을 대접받고 귀여움을 받아, 청년은 자기가 틀림없이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빵과 찬 고기, 커피와 피클과 치즈가 아낌없이 나왔다. 소녀들의 미소를 흠뻑 받고 노인들의 토닥임과 칭찬을 받으며, 그는 위대한 무훈을 세울 힘이 제 안에서 자라는 것을 느꼈다.
숱하게 멈춰 가며 복잡한 여정을 거친 뒤, 몇 달 동안 단조로운 야영 생활이 이어졌다. 그는 진짜 전쟁이란 잠자고 먹을 짬만 조금씩 두고 사투를 벌이는 일의 연속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그의 연대가 전장에 온 뒤로 군대는 가만히 앉아 몸을 따뜻하게 지키려 애쓰는 것 말고는 한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차츰 예전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그리스 영웅담 같은 싸움은 이제 없을 터였다. 사람들은 더 선량해졌거나, 아니면 더 겁이 많아졌다. 세속 교육과 종교 교육이 서로의 목을 움켜쥐려는 본능을 지워 버렸거나, 아니면 탄탄한 재정이 격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를 거대한 푸른 무력시위의 한낱 일부로 여기게 되었다. 그가 신경 쓸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제 몸을 편히 하는 것이었다. 심심할 때는 엄지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장군들의 머릿속을 들볶고 있을 생각들이 무엇일지 헤아려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훈련을 받고 훈련을 받고 사열을 받고, 훈련을 받고 훈련을 받고 사열을 받았다.
그가 본 적군이라고는 강기슭의 전초병 몇 명이 전부였다. 그들은 볕에 그은 철학자 같은 무리로, 이따금 사색에 잠긴 듯 푸른 군복의 전초병들에게 총을 쏘곤 했다. 뒤에 그 일을 나무라면 대개는 미안해하면서, 자기들이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총이 저절로 터졌다고 자기네 신들에게 맹세했다. 청년은 어느 날 밤 보초를 서다가 강 건너편의 그들 가운데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남루한 차림의 사내였는데, 두 신발 사이로 솜씨 좋게 침을 뱉었고, 천연덕스럽고 어린애 같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청년은 개인적으로 그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양키, 넌 참 더럽게 좋은 녀석이야.” 상대가 그에게 말해 주었다. 고요한 공기를 타고 떠온 이 말에 그는 잠시 전쟁이 벌어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여러 노병이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이들은 회색 군복에 수염이 덥수룩한 무리가 끊임없이 욕지거리를 해 대며 전진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용맹을 떨치며 담배를 씹어 댄다고 했다. 훈족처럼 휩쓸고 다니는 사나운 병사들의 어마어마한 대군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누더기를 걸치고 늘 굶주린 채 풀이 죽은 화약을 터뜨리는 사내들 이야기를 했다. “식량 주머니 하나 손에 넣겠다고 지옥 불과 유황 속으로라도 돌격할 놈들이야. 그런 배로는 오래 못 버티지.” 그는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청년은 살아 있는 붉은 뼈들이 빛바랜 군복의 찢어진 틈새로 삐져나온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도 노병들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었다. 신병들은 그들의 먹잇감이었으니까. 그들은 연기며 불길이며 피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얼마나 거짓말이 섞였을지 알 수가 없었다. 툭하면 그에게 “싱싱한 물고기!”라고 소리쳤으니, 도무지 믿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그가 맞서 싸울 병사들이 어떤 이들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싸우기만 한다면 그만이었고, 그들이 싸운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는 침상에 누워 그 문제를 골똘히 생각했다. 자기가 전투에서 달아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스스로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려 했다.
이전에는 이 문제와 그렇게 심각하게 씨름할 필요를 느낀 적이 없었다. 살면서 어떤 일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고, 결국은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의심해 본 적도 없었으며, 수단이나 거기 이르는 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중대한 문제와 맞닥뜨렸다. 전투가 벌어지면 자기가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전쟁에 관한 한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문제를 마음의 문밖에서 하릴없이 기다리게 내버려 두었겠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작은 공포가 자라났다. 싸움을 미리 상상해 보자 끔찍한 가능성들이 보였다. 미래에 도사린 위협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 한가운데서 꿋꿋이 버티는 제 모습은 아무리 애써도 그려지지 않았다. 부러진 칼날의 영광을 꿈꾸던 환상을 떠올렸지만, 닥쳐오는 소란의 그림자 아래서는 그것들이 실현 불가능한 그림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초조하게 이리저리 서성이기 시작했다. “맙소사,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소리 내어 말했다.
이 위기 앞에서는 삶을 이끌어 온 법칙들이 아무 소용 없다고 느꼈다.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라면 무엇 하나 여기서는 쓸모가 없었다. 그는 하나의 미지수였다.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다시 실험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하나 알아 가야 했고, 그동안은 자기도 모르는 성질들이 자신에게 영원한 치욕을 안기는 일이 없도록 바짝 경계하기로 했다. “맙소사!” 그는 당혹스러워하며 되풀이했다.
얼마 뒤 키 큰 병사가 능숙하게 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목청 큰 이등병이 뒤따랐다. 둘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래, 좋아.” 키 큰 병사가 들어오며 말했다. 그는 손을 휘저어 제 뜻을 드러냈다. “나를 믿든 말든 네 맘대로 해. 넌 그저 앉아서 되도록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러면 곧 내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동료는 고집스레 투덜거렸다. 잠시 무슨 말로 호되게 맞받아칠까 궁리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그래, 네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건 아니잖아?”
“내가 세상 모든 일을 안다고는 안 했잖아.” 상대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러고는 여러 물건을 배낭 안에 꼭꼭 챙겨 넣기 시작했다.
청년은 초조하게 서성이던 걸음을 멈추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짐, 전투가 벌어지는 건 확실한 거야?” 하고 물었다.
“그럼, 벌어지고말고.” 키 큰 병사가 대답했다. “그럼, 벌어지고말고. 내일까지 기다려 봐. 이제껏 벌어진 전투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큰 전투를 보게 될 거야. 기다려 보라니까.”
“젠장!” 청년이 말했다.
“아, 이번에는 진짜 싸움을 보게 될 거야, 이 녀석아. 그야말로 제대로 된 싸움을 말이야.” 키 큰 병사는 친구들을 위해 곧 전투를 구경시켜 주기라도 할 사람처럼 덧붙였다.
“흥!” 구석에서 목청 큰 사내가 말했다.
“글쎄.” 청년이 말했다. “이 얘기도 아마 그전 얘기들처럼 되고 말걸.”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키 큰 병사가 짜증이 나서 대답했다. “그럴 리 없다니까. 오늘 아침에 기병이 다 출발하지 않았어?” 그는 주위를 노려보았다.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기병은 오늘 아침에 출발했어.” 그가 말을 이었다. “야영지에 남아 있는 기병이 거의 없다더라. 우리가 남군 녀석들을 모조리 상대하는 동안 기병은 리치먼드인가 어딘가로 가는 거야. 뭐 그런 식의 꾀를 쓰는 거지. 연대에도 명령이 왔어. 사령부로 가는 걸 봤다는 친구가 조금 전에 내게 얘기해 줬어. 게다가 야영지 곳곳에서 난리 법석이잖아—누구라도 보면 알아.”
“쳇!” 목청 큰 사내가 말했다.
청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침내 키 큰 병사에게 말을 걸었다. “짐!”
“왜?”
“연대가 어떻게 싸울 것 같아?”
“뭐, 그 친구들도 일단 싸움에 뛰어들면 잘 싸우겠지, 아마.” 상대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삼인칭을 아주 훌륭하게 써먹었다. “물론 신병이니 뭐니 해서 놀림은 실컷 받았지만, 그래도 잘 싸우겠지, 아마.”
“달아나는 녀석도 있을 것 같아?” 청년이 끈질기게 물었다.
“뭐, 몇 놈은 달아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놈은 어느 연대에나 있어. 특히 처음 사격을 받을 때는.” 상대는 너그러이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큰 싸움이 붙으면 몽땅 달아날 수도 있고, 또 버티고 서서 악착같이 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순 없어. 물론 아직 적의 사격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처음부터 반란군을 통째로 단번에 무찌를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떤 연대보다는 못하더라도 어떤 연대보다는 잘 싸울 거라고 생각해. 난 그렇게 봐. 연대를 ‘싱싱한 물고기’니 뭐니 하지만, 녀석들 근본은 좋으니까, 대부분은 무섭게 싸울 거야, 일단 총을 쏘기 시작하면.” 그는 마지막 네 단어에 힘을 잔뜩 실어 덧붙였다.
“허, 넌 안다 이거지—” 목청 큰 병사가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상대가 그를 향해 사납게 돌아섰다. 둘은 숨 가쁘게 다투며 서로에게 갖가지 괴상한 욕설을 갖다 붙였다.
마침내 청년이 둘의 말을 끊었다. “짐, 네가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있어?” 하고 물었다. 말을 마치고는 농담으로 한 말인 것처럼 웃었다. 목청 큰 병사도 키득거렸다.
키 큰 이등병이 손을 내저었다. “글쎄.” 그는 심오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싸움에서는 짐 콩클린도 버티기 힘들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어. 녀석들이 우르르 달아나기 시작하면, 뭐, 나도 달아나겠지 싶어. 한번 달아나기 시작하면 나도 죽어라 달아날 거야. 그건 틀림없어. 하지만 모두가 버티고 서서 싸운다면, 뭐, 나도 버티고 서서 싸울 거야. 정말이지, 그러고말고. 그건 장담해.”
“흥!” 목청 큰 사내가 말했다.
이 이야기의 청년은 동료의 그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실전을 겪지 않은 사내들 모두가 대단한 자신감을 지녔으며 그럴 만한 근거도 있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