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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Dickens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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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Charles Dickens 지음

Charles Dickens의 퍼블릭 도메인에 속하는 고전 · NovelSpell의 새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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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Charles Dickens

제1장: 말리의 유령

먼저 말하자면, 말리는 죽어 있었다. 그 점에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매장 기록에는 목사와 서기, 장의사, 상주가 서명했다. 스크루지도 서명했다. 거래소에서 스크루지의 이름은 무엇에 서명하든 확실한 보증이 되었다. 말리 영감은 문짝 못처럼 죽어 있었다.

잠깐! 문짝 못의 무엇이 그토록 특별히 죽어 있다는 건지 내가 몸소 알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나 같으면 철물 가운데 가장 죽어 있는 물건으로 관에 박는 못을 꼽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비유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내 불경한 손으로 그걸 건드렸다가는 나라가 망할 테니 손댈 생각은 없다. 그러니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라. 말리는 문짝 못처럼 죽어 있었다.

스크루지는 말리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고? 물론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있었겠는가? 두 사람은 몇 년인지 나도 모를 만큼 오랫동안 동업을 했다. 스크루지는 말리의 유일한 유언 집행인, 유일한 유산 관리인, 유일한 권리 양수인, 유일한 잔여 유산 상속인이었으며, 유일한 친구이자 유일하게 그 죽음을 애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스크루지조차 그 슬픈 일로 비탄에 빠진 나머지 장사를 못 할 지경은 아니어서, 장례 당일에도 훌륭한 장사꾼의 면모를 보였고, 누가 봐도 유리한 거래를 성사시켜 장례를 엄숙히 기념했다.

말리의 장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 꺼낸 말로 돌아오게 된다. 말리가 죽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제 들려줄 이야기에서 신기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햄릿의 아버지가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지 않는다면, 동풍 부는 밤에 자기 성벽 위를 거니는 모습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다른 중년 신사가 어두워진 뒤에 경솔하게 바람 부는 곳으로—이를테면 세인트폴 대성당 묘지 같은 곳으로—나가 자기 아들의 허약한 정신을 말 그대로 기겁하게 하는 것보다 더 놀라울 까닭이 없을 테니 말이다.

스크루지는 말리 영감의 이름을 페인트로 지운 적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창고 문 위에는 그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크루지와 말리. 회사는 스크루지와 말리로 알려져 있었다. 처음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스크루지를 스크루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말리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어느 이름으로 불러도 대답했다. 스크루지에게는 아무 차이도 없었다.

아아! 스크루지는 악착같이 일하면서 손아귀는 결코 풀지 않는 구두쇠였다! 쥐어짜고, 비틀어 빼앗고, 움켜잡고, 긁어모으고, 놓지 않고, 탐욕을 부리는 늙은 죄인! 어떤 부싯쇠로 쳐도 여태껏 너그러운 불꽃 하나 튀지 않은 부싯돌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속내를 감추고, 제 안에 틀어박히고, 굴처럼 홀로 지냈다. 속에 도사린 냉기는 늙은 얼굴을 얼리고 뾰족한 코를 에고 뺨을 쪼그라뜨리고 걸음걸이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눈은 붉게, 얇은 입술은 푸르게 물들였으며,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타고 매섭게 드러났다. 머리에도 눈썹에도 억센 털이 난 턱에도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스크루지는 어디를 가든 자기만의 낮은 체온을 지니고 다녔다. 한여름 복더위에도 사무실을 얼어붙게 했고, 크리스마스에도 1도만큼조차 녹이지 않았다.

바깥의 더위나 추위는 스크루지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어떤 온기도 따뜻하게 해 줄 수 없었고, 어떤 겨울 날씨도 더 춥게 만들 수 없었다. 아무리 매운 바람도 스크루지보다 매섭지는 않았고, 내리는 눈도 제 목적에 그만큼 집요하지는 않았으며, 퍼붓는 비도 간청에 그만큼 귀를 닫지는 않았다. 악천후조차 어디를 파고들어야 할지 몰랐다. 아무리 거센 비와 눈과 우박과 진눈깨비라도 스크루지보다 낫다고 자랑할 수 있는 점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은 곧잘 “후하게 쏟아부었지만”, 스크루지는 돈을 후하게 쏟아붓는 일이 결코 없었다.

길에서 스크루지를 붙들고 반색하며 “친애하는 스크루지, 잘 지내나? 언제 나를 보러 올 건가?” 하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푼돈을 달라고 애원하는 거지도 없었고, 몇 시냐고 묻는 아이도 없었으며, 평생 남자든 여자든 스크루지에게 어디로 가는 길을 물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앞 못 보는 사람들의 개들조차 스크루지를 알아보는 듯했다.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면 주인을 잡아끌어 문간이나 골목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꼬리를 흔드는 것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앞 못 보는 주인님, 못된 눈을 갖느니 눈이 아예 없는 편이 낫답니다!”

하지만 스크루지가 무슨 상관을 했겠는가? 오히려 그건 꼭 바라던 일이었다. 사람 사이의 모든 정에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경고하면서 붐비는 인생길을 비집고 지나가는 일은, 세상 물정에 밝다는 이들의 말로 하자면 스크루지에게 “별미”였다.

어느 날—일 년의 그 많은 좋은 날 가운데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에—스크루지 영감은 회계 사무실에 앉아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춥고 황량하고 살을 에는 날씨였으며, 거기에 안개까지 끼었다. 바깥 골목에서는 사람들이 쌕쌕 숨을 몰아쉬며 오가고, 몸을 덥히려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돌바닥에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런던 시티의 시계들은 이제 막 세 시를 알렸을 뿐인데 벌써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온종일 밝았던 적도 없었지만—주변 사무실 창문마다 촛불이 일렁이며, 손에 잡힐 듯 짙은 갈색 공기에 붉은 얼룩을 찍어 놓은 것 같았다. 안개는 틈새와 열쇠 구멍마다 밀려들었고, 밖에는 너무도 짙게 깔려서 골목이 더없이 좁은데도 맞은편 집들은 희미한 환영들에 불과했다. 거무스름한 구름이 축 늘어져 내려와 모든 것을 가리는 모습을 보면, 자연이 바로 근처에 살면서 엄청난 양의 맥주를 빚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스크루지는 직원을 감시하려고 회계 사무실 문을 열어 두었다. 직원은 문 너머의 음침하고 비좁은 작은 방, 일종의 수조에서 편지를 베껴 쓰고 있었다. 스크루지의 벽난로에도 불은 아주 작았지만, 직원의 불은 그보다 훨씬 더 작아서 석탄 한 덩이만 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석탄을 더 넣을 수도 없었다. 스크루지가 석탄 상자를 자기 방에 두고 있었고, 직원이 삽을 들고 들어오기만 하면 두 사람이 갈라서야 할 것 같다는 예고를 어김없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은 흰 목도리를 두르고 촛불에 몸을 녹여 보려고 했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던 터라 그 시도는 실패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외삼촌! 하느님께서 외삼촌을 지켜 주시기를!” 명랑한 목소리가 외쳤다. 스크루지의 조카 목소리였다. 어찌나 갑자기 다가왔던지 스크루지는 그 말을 듣고서야 조카가 온 것을 알았다.

“흥!” 스크루지가 말했다. “허튼소리!”

스크루지의 조카는 안개와 서리 속을 빠르게 걸어온 탓에 몸이 달아올라 온통 생기가 돌았다. 잘생긴 얼굴은 불그스름했고, 눈은 반짝였으며,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피어올랐다.

“크리스마스가 허튼소리라고요, 외삼촌!” 스크루지의 조카가 말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은 아니죠?”

“진심이다.” 스크루지가 말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라니! 네가 즐거워할 무슨 권리가 있느냐? 즐거워할 무슨 이유가 있어? 넌 가난한 처지잖느냐.”

“그럼 이렇게 여쭤볼게요.” 조카가 유쾌하게 대꾸했다. “외삼촌은 침울해하실 무슨 권리가 있으세요? 심술을 부리실 무슨 이유가 있고요? 외삼촌은 부유하시잖아요.”

스크루지는 당장 더 나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다시 “흥!” 하고는 이어서 “허튼소리!”라고 했다.

“화내지 마세요, 외삼촌!” 조카가 말했다.

“이런 바보들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화를 안 내겠느냐?” 외삼촌이 대꾸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즐거운 크리스마스는 무슨! 네게 크리스마스철이라는 게 대체 뭐냐? 돈도 없는데 청구서 대금을 내야 하는 때, 나이는 한 살 더 먹었는데 재산은 한 시간어치도 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는 때, 장부를 결산해 보니 꼬박 열두 달 동안의 항목이 죄다 네게 불리하게 나오는 때일 뿐이지 않으냐?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스크루지가 분개하며 말했다. “입에 ‘즐거운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멍청이는 모조리 제 푸딩과 함께 삶아서 심장에 호랑가시나무 말뚝을 박아 묻어 버리겠다. 꼭 그렇게 해야 해!”

“외삼촌!” 조카가 애원했다.

“조카야!” 외삼촌이 엄하게 대꾸했다. “넌 네 방식대로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나도 내 방식대로 지내게 내버려 둬라.”

“지내신다고요!” 스크루지의 조카가 되풀이했다. “외삼촌은 크리스마스를 지내지도 않으시잖아요.”

“그럼 아예 내버려 두게 해 다오.” 스크루지가 말했다. “네게 아주 큰 도움이 되겠구나! 지금껏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겠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제가 이득을 얻지 못한 일이 많았을 거예요.” 조카가 대꾸했다. “크리스마스도 그중 하나겠지요. 하지만 해마다 크리스마스철이 돌아오면 저는 늘 좋은 때라고 생각했어요—그 거룩한 이름과 기원에 마땅히 바쳐야 할 경외심을 떠나서도요. 크리스마스에 속한 어떤 것이든 그 경외심과 떼어 놓을 수 있다면 말이지만요—친절하고, 용서하고, 베풀고, 즐거워하는 때라고요. 일 년이라는 긴 달력 속에서, 제가 아는 한 남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닫아 두었던 마음을 활짝 여는 때는 그때뿐이에요.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도 다른 길로 가는 별종이 아니라, 정말로 무덤까지 함께 가는 길동무라고 생각하는 때죠. 그래서 외삼촌, 크리스마스가 제 주머니에 금이나 은을 한 조각도 넣어 준 적은 없지만, 저는 분명 제게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 이렇게 말하겠어요. 크리스마스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수조 안의 직원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곧바로 경솔한 행동이었음을 깨닫고 불을 쑤셨다가 마지막 가냘픈 불씨마저 영영 꺼뜨리고 말았다.

“자네 입에서 소리가 한 번만 더 나면,” 스크루지가 말했다. “일자리를 잃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지내게 될 걸세!” 그러고는 조카에게 돌아서며 덧붙였다. “선생, 연설 솜씨가 참 대단하구먼. 의회에는 왜 안 들어가는지 모르겠어.”

“화내지 마세요, 외삼촌. 자, 내일 저희와 함께 저녁 드세요.”

스크루지는 차라리 조카가 지옥에 가는 꼴을 보겠다고 했다—그렇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 표현을 끝까지 다 해 버리고는, 조카가 그런 끔찍한 꼴을 당하는 것을 먼저 보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왜요?” 스크루지의 조카가 외쳤다. “왜 그러세요?”

“넌 왜 결혼을 했느냐?” 스크루지가 말했다.

“사랑에 빠졌으니까요.”

“사랑에 빠졌으니까!” 스크루지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보다 더 우스운 것이 세상에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이라는 듯 으르렁거렸다. “안녕히 가시오!”

“하지만 외삼촌, 그전에도 절 보러 오신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걸 안 오시는 이유로 대세요?”

“안녕히 가시오.” 스크루지가 말했다.

“외삼촌께 바라는 것도 없고, 부탁드리는 것도 없어요. 그런데 왜 저희가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나요?”

“안녕히 가시오!” 스크루지가 말했다.

“그렇게 단호하시다니 정말 마음이 아파요. 저 때문에 저희가 다툰 적은 한 번도 없잖아요.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시도해 봤으니, 끝까지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지킬게요. 그럼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외삼촌!”

“안녕히 가시오.” 스크루지가 말했다.

“그리고 행복한 새해 보내세요!”

“안녕히 가시오!” 스크루지가 말했다.

그런데도 조카는 성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바깥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직원에게 명절 인사를 건넸다. 직원은 몸은 추웠어도 스크루지보다 따뜻한 사람이어서 진심 어린 인사로 화답했다.

그 말을 들은 스크루지가 중얼거렸다. “저기 또 하나 있군. 주급 15실링을 받으면서 아내에 자식들까지 둔 내 직원이 즐거운 크리스마스 타령이라니. 베들럼 정신병원으로나 들어가야겠어.”

이 미치광이는 스크루지의 조카를 내보내면서 다른 두 사람을 들여보냈다. 풍채가 좋고 인상도 좋은 신사들이었는데, 이제 모자를 벗고 스크루지의 사무실에 서 있었다. 손에는 장부와 서류를 들고 있었고, 스크루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스크루지와 말리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신사 한 사람이 명부를 살펴보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는 분이 스크루지 씨이신가요, 말리 씨이신가요?”

“말리 씨는 죽은 지 7년 되었소.” 스크루지가 대답했다. “7년 전 바로 오늘 밤에 죽었지요.”

“살아 계신 동업자께서 고인의 후한 마음을 충분히 이어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신사가 신임장을 내밀며 말했다.

물론 그랬다. 두 사람은 마음이 꼭 맞는 사이였으니까. 스크루지는 “후한 마음”이라는 불길한 말을 듣자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으며 신임장을 돌려주었다.

“스크루지 씨, 한 해의 이 축제철에는,” 신사가 펜을 들며 말했다. “지금 큰 고통을 겪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마련해 주는 일이 평소보다 더 절실합니다. 수천수만 명이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없이 지내고, 수십만 명이 기본적인 안락함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옥은 없소?” 스크루지가 물었다.

“감옥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신사가 펜을 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교구 연합 구빈원은?” 스크루지가 다그쳤다. “아직도 운영하고 있소?”

“그렇습니다. 여전히요.” 신사가 대답했다.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그럼 답차 형벌과 구빈법도 여전히 활발히 시행되고 있겠구먼?” 스크루지가 말했다.

“둘 다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 처음 하신 말씀을 듣고는 무슨 일이 생겨서 그 유익한 활동이 중단된 줄 알았소.” 스크루지가 말했다. “그렇다니 아주 기쁘군요.”

“그런 제도들이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맞는 마음의 위안이나 몸의 안락함을 거의 주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신사가 대꾸했다. “저희 몇 사람이 가난한 이들에게 고기와 마실 것, 몸을 따뜻하게 할 물품을 사 주려고 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때를 택한 것은 다른 어느 때보다 궁핍은 뼈저리게 느껴지고 풍요는 기쁨에 넘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내시는 것으로 적을까요?”

“한 푼도 안 내겠소!” 스크루지가 대답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내가 바라는 건 혼자 있게 내버려 두는 거요.” 스크루지가 말했다. “내가 뭘 바라는지 물으셨으니, 신사 여러분, 내 대답은 그거요. 나 자신도 크리스마스에 흥청거리지 않는데 게으른 사람들까지 즐겁게 해 줄 여유는 없소. 내가 말한 시설들을 유지하는 데 돈을 보태고 있소—그것도 돈이 충분히 드니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거기로 가면 되오.”

“거기에 갈 수 없는 사람도 많고, 차라리 죽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차라리 죽겠다면,” 스크루지가 말했다. “그렇게 해서 잉여 인구를 줄이는 편이 낫겠지요. 게다가—실례지만—난 그런 사정은 모르오.”

“하지만 알아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요.” 신사가 말했다.

“내 일이 아니오.” 스크루지가 대꾸했다. “자기 일이나 제대로 알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으면 충분하오. 내 일만으로도 늘 바쁘니까. 안녕히 가시오, 신사 여러분!”

더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신사들은 물러갔다. 스크루지는 자신을 더욱 흡족하게 여기며, 평소보다 익살스러운 기분으로 다시 일에 몰두했다.

그동안 안개와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사람들은 활활 타는 횃불을 들고 뛰어다니며, 마차의 말들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나섰다. 벽의 고딕식 창문으로 무뚝뚝한 늙은 종이 늘 스크루지를 슬쩍 내려다보던 오래된 교회 탑도 이제 보이지 않았다. 종은 구름 속에서 정각과 십오 분마다 시간을 알렸으며, 뒤이어 가늘게 떨리는 울림을 남겼다. 저 위에서 머리가 얼어붙어 이가 딱딱 부딪치는 것 같았다. 추위는 몹시 심해졌다. 골목이 큰길과 만나는 모퉁이에서는 노동자 몇 사람이 가스관을 수리하며 화로에 큰불을 피워 놓았다. 누더기를 걸친 남자들과 소년들이 그 주위에 모여, 불길 앞에서 손을 녹이고 눈을 깜박이며 황홀해했다. 홀로 버려진 수도전에서는 흘러넘친 물이 갑자기 얼어붙어 인간을 혐오하는 얼음이 되었다. 가게 진열창의 등불 열기에 호랑가시나무 가지와 열매가 타닥거렸고, 가게의 환한 빛은 지나가는 창백한 얼굴들을 붉게 물들였다. 가금류 장사며 식료품 장사는 화려한 한바탕 익살극, 눈부신 행렬이 되었다. 흥정이니 판매니 하는 따분한 원리가 그 광경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고 믿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런던 시티 시장은 웅장한 맨션 하우스라는 본거지에서 요리사와 집사 쉰 명에게 시장의 집안답게 크리스마스를 지내라고 명령했다. 지난 월요일에 술에 취해 거리에서 살기등등하게 굴었다고 시장에게 5실링의 벌금을 물었던 작달막한 재단사조차 다락방에서 내일 먹을 푸딩을 젓고 있었고, 앙상한 아내와 아기는 쇠고기를 사러 나섰다.

안개는 더 짙어지고, 날씨는 더 추워졌다! 꿰뚫고, 파고들고, 살을 에는 추위였다. 선한 성 둔스탄이 늘 쓰던 무기 대신 이런 날씨를 조금만 써서 악한 혼령의 코를 집었더라면, 악한 혼령은 정말이지 우렁차게 울부짖었을 것이다. 개가 뼈를 갉듯 굶주린 추위에 갉아 먹히고 우물거려지는 작고 여린 코의 주인이 스크루지의 열쇠 구멍 앞에 몸을 굽혔다. 크리스마스 캐럴로 즐겁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래의 첫 소절이 들리는 순간,

“즐거운 신사여, 그대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 무엇에도 마음 꺾이지 않기를!”

스크루지가 어찌나 기세 좋게 자를 집어 들었던지 노래하던 아이는 겁에 질려 달아났다. 열쇠 구멍은 안개와, 스크루지와 더욱 마음이 잘 맞는 서리의 차지가 되었다.

마침내 회계 사무실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스크루지는 마지못해 높은 의자에서 내려와, 수조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에게 말없이 퇴근 시간을 인정해 주었다. 직원은 즉시 촛불을 끄고 모자를 썼다.

“내일은 하루 종일 쉬고 싶겠지?” 스크루지가 말했다.

“형편이 괜찮으시다면요.”

“괜찮지 않네.” 스크루지가 말했다. “공평하지도 않고. 그 때문에 반 크라운을 떼면 자네는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할 게 틀림없겠지?”

직원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데도,” 스크루지가 말했다. “일도 안 했는데 하루치 급료를 내줄 때는 내가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군.”

직원은 일 년에 한 번뿐이라고 말했다.

“12월 25일마다 남의 주머니를 터는 구실치고는 형편없군!” 스크루지는 외투 단추를 턱까지 채우며 말했다. “그래도 하루를 통째로 쉬어야겠다는 거지. 그다음 날 아침에는 그만큼 더 일찍 오게.”

직원은 그러겠다고 약속했고, 스크루지는 으르렁거리며 나갔다. 사무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문을 닫았다. 긴 흰 목도리 양 끝을 허리 아래로 늘어뜨린 직원은—내세울 만한 외투가 없었기 때문이다—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하여 콘힐에서 소년들이 늘어선 줄 끝에 서서 얼음 미끄럼을 스무 번이나 탔다. 그러고는 눈가림 술래잡기를 하려고 캠던타운의 집까지 있는 힘껏 내달렸다.

스크루지는 늘 가는 쓸쓸한 술집에서 쓸쓸한 저녁을 먹었다. 신문을 모두 읽고, 남은 저녁 시간은 은행 통장으로 달랜 뒤 잠을 자러 집에 갔다. 사는 곳은 죽은 동업자가 한때 쓰던 방들이었다. 안뜰 깊숙이 들어선 음산한 큰 건물 안의 침침한 방들이었다. 건물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어찌나 없어 보였던지, 어린 집이었을 때 다른 집들과 숨바꼭질하다 거기로 달려 들어간 뒤 나오는 길을 잊어버린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제는 충분히 늙었고 충분히 황량했다. 나머지 방은 모두 사무실로 세를 놓아, 그곳에 사는 사람은 스크루지뿐이었기 때문이다. 안뜰은 너무 어두워서 돌 하나하나를 다 아는 스크루지조차 손으로 더듬어야 했다. 안개와 서리가 집의 검고 낡은 대문 주위에 어찌나 엉겨 붙었던지, 날씨의 수호신이 문턱에 앉아 슬픈 명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런데 문에 달린 문 두드리개에는 아주 크다는 것 말고는 전혀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스크루지가 그곳에 산 내내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보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스크루지에게는 이른바 상상력이라는 것이 런던 시티의 어느 누구 못지않게 부족했다. 여기에는—과감한 말이지만—시 자치정부와 참사위원들, 길드 회원들까지 포함된다. 그날 오후에 죽은 지 7년 된 동업자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꺼낸 뒤로 스크루지가 말리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 두시라. 그런 다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내게 설명해 주기 바란다. 스크루지가 문 자물쇠에 열쇠를 꽂고 있을 때, 문 두드리개가 아무런 중간 변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 자리에 보인 것이—문 두드리개가 아니라 말리의 얼굴이었는지를.

말리의 얼굴이었다. 안뜰의 다른 물건들처럼 꿰뚫어 볼 수 없는 그림자에 잠겨 있지 않고, 어두운 지하실의 썩은 바닷가재처럼 주위에 음산한 빛을 띠고 있었다. 성나거나 사나운 표정은 아니었다. 말리가 늘 바라보던 눈길로 스크루지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유령의 안경을 유령의 이마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입김이나 뜨거운 공기에 날리듯 기묘하게 움직였고, 눈은 크게 뜨고 있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눈과 납빛 얼굴이 끔찍했다. 하지만 그 끔찍함은 얼굴 자체의 표정이라기보다, 얼굴의 뜻을 거슬러 통제할 수 없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스크루지가 이 기이한 현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자, 그것은 다시 문 두드리개가 되었다.

놀라지 않았다거나, 어려서부터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끔찍한 감각이 핏속을 흐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스크루지는 놓았던 열쇠에 다시 손을 얹고 힘껏 돌린 다음, 안으로 들어가 촛불을 켰다.

문을 닫기 전에 잠깐 망설이며 멈춰 선 것은 분명했다. 먼저 문 뒤를 조심스럽게 살펴본 것도 분명했다. 말리의 땋은 머리가 현관으로 삐죽 나와 있는 무서운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반쯤은 예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 뒤에는 문 두드리개를 고정한 나사와 너트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흥, 흥!” 하고는 문을 쾅 닫았다.

그 소리는 천둥처럼 집 안을 울렸다. 위층의 방들마다, 아래층 포도주 상인의 지하실에 있는 술통들마다 저마다의 메아리를 따로 울리는 듯했다. 스크루지는 메아리 따위에 겁먹을 사람이 아니었다. 문을 잠그고 현관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갔다. 그것도 천천히, 걸어가며 촛불 심지를 손질하면서.

튼튼한 옛 계단 위로나 의회가 엉성하게 만든 새 법률의 틈새로 말 여섯 필이 끄는 마차도 몰고 갈 수 있다고 막연히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저 계단에는 영구차를 가로로 돌려서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앞 가로대는 벽을 향하고 문은 난간을 향하도록 해서 말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그만큼 폭이 넓고도 남았다. 그래서 스크루지는 어둠 속에서 저절로 움직이는 영구차 한 대가 자기 앞을 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거리의 가스등 여섯 개를 가져와도 입구를 그리 환하게 밝히지는 못했을 테니, 스크루지의 값싼 양초 하나로는 얼마나 어두웠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루지는 그런 것에는 눈곱만큼도 개의치 않고 올라갔다. 어둠은 돈이 들지 않았고, 스크루지는 어둠을 좋아했다. 하지만 무거운 방문을 닫기 전에 방들을 둘러보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 얼굴에 대한 기억이 꼭 그 정도는 하고 싶을 만큼 남아 있었다.

거실, 침실, 잡동사니 방. 모두 있어야 할 모습 그대로였다. 탁자 밑에도 아무도 없고, 소파 밑에도 아무도 없었다. 벽난로에는 작은 불이 타고 있었고, 숟가락과 그릇이 준비되어 있었다. 난로 선반에는 죽을 담은 작은 냄비가 놓여 있었다. 스크루지는 코감기에 걸려 있었다. 침대 밑에도 아무도 없고, 벽장 안에도 아무도 없고, 벽에 수상쩍은 자세로 걸린 실내 가운 속에도 아무도 없었다. 잡동사니 방도 평소 그대로였다. 낡은 난로 가림막, 낡은 신발, 생선 바구니 두 개, 다리가 셋인 세면대, 부지깽이 하나.

충분히 안심한 스크루지는 방문을 닫고 안에서 잠갔다. 평소와 달리 두 번 잠갔다. 이렇게 불시에 놀랄 일을 막아 놓고는 크라바트를 풀고, 실내 가운과 슬리퍼를 걸치고, 잠자리 모자를 쓴 뒤, 죽을 먹으려고 불 앞에 앉았다.

불은 정말이지 아주 약했다. 이토록 매서운 밤에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연료에서 조금이라도 온기를 얻으려면 바짝 다가앉아 불 위로 몸을 웅크려야 했다. 벽난로는 오래전에 어느 네덜란드 상인이 만든 낡은 것이었고, 둘레에는 성경 이야기를 그린 옛스러운 네덜란드 타일이 둘러져 있었다. 카인들과 아벨들, 파라오의 딸들, 시바의 여왕들, 깃털 침대 같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 사자들, 아브라함들, 벨사살들, 버터 소스 그릇을 타고 바다로 나서는 사도들, 생각을 끌어당길 형상들이 수백이나 있었다. 그런데도 죽은 지 7년 된 말리의 얼굴이 옛 예언자의 지팡이처럼 나타나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매끈한 타일들이 처음에는 아무 그림도 없는 상태에서 스크루지의 흩어진 생각 조각들을 모아 표면에 그림을 빚어낼 수 있었다면, 하나하나마다 말리 영감의 머리가 그려졌을 것이다.

“허튼소리!” 스크루지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가로질러 걸었다.

몇 번 오간 뒤 다시 앉았다. 의자에 머리를 젖히다가 우연히 종 하나에 시선이 머물렀다. 방 안에 걸린, 이제는 쓰지 않는 종이었다. 지금은 잊힌 어떤 용도로 건물 꼭대기 층의 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바라보는 동안 그 종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스크루지는 몹시 놀랐고, 이상하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처음에는 너무 살살 흔들려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지만, 곧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집 안의 모든 종도 함께 울렸다.

삼십 초쯤, 아니면 일 분쯤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종들은 울리기 시작했을 때처럼 일제히 멎었다. 그 뒤를 이어 깊숙한 아래쪽에서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포도주 상인의 지하실에서 술통들 위로 무거운 사슬을 끄는 듯했다. 그제야 스크루지는 귀신 들린 집의 유령들은 사슬들을 끌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지하실 문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벌컥 열렸다. 그러고는 아래층에서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리더니, 계단을 올라왔고, 곧장 방문 쪽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허튼소리야!” 스크루지가 말했다. “믿지 않겠어.”

하지만 그것이 멈추지도 않고 무거운 문을 뚫고 들어와 눈앞에서 방 안으로 들어서자 스크루지의 낯빛이 변했다. 그것이 들어오는 순간 꺼져 가던 불꽃이 솟구쳤다. 마치 “난 저 사람을 알아! 말리의 유령이야!” 하고 외치는 듯했다. 그러고는 다시 잦아들었다.

똑같은 얼굴, 바로 그 얼굴이었다. 땋은 머리에 늘 입던 조끼와 꼭 끼는 바지, 장화를 신은 말리였다. 장화의 술 장식은 땋은 머리와 외투 자락, 머리카락처럼 곤두서 있었다. 끌고 온 사슬은 허리에 채워져 있었다. 길고 꼬리처럼 몸을 휘감은 사슬이었다. 그것은 강철로 만든 현금 상자, 열쇠, 자물쇠, 장부, 증서, 묵직한 돈주머니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크루지가 유심히 살펴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몸은 투명해서, 스크루지는 조끼 너머로 등 뒤 외투의 단추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스크루지는 말리가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지금까지는 믿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믿지 않았다. 환영을 이리저리 꿰뚫어 보고 눈앞에 서 있는 모습도 보았으며, 죽음처럼 차가운 눈에서 냉기를 느끼고, 전에는 보지 못했던 머리와 턱을 감싸 묶은 접힌 손수건의 올까지 알아보았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제 감각에 맞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스크루지가 여전히 차갑고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나?”

“아주 많지!”—말리의 목소리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자넨 누군가?”

“내가 누구였는지 물어보게.”

“그럼 누구였나?” 스크루지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유령치고는 까다롭구먼.” 원래는 ‘귀신같이 까다롭다’고 하려다가 이쪽이 더 어울리겠다 싶어 말을 바꾼 것이다.

“살아 있을 때 나는 자네 동업자, 제이컵 말리였네.”

“자네—앉을 수는 있나?” 스크루지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앉을 수 있네.”

“그럼 앉게.”

스크루지가 그렇게 물은 것은 저토록 투명한 유령이 의자에 앉을 만한 상태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 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난처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유령은 아주 익숙한 일이라는 듯 벽난로 맞은편에 앉았다.

“자네는 나를 믿지 않는군.” 유령이 말했다.

“믿지 않네.” 스크루지가 말했다.

“자네 자신의 감각이 알려 주는 것 말고,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모르겠네.” 스크루지가 말했다.

“왜 자기 감각을 의심하나?”

“사소한 것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 스크루지가 말했다. “위장이 조금만 탈 나도 감각은 거짓말을 하네. 자네는 소화되지 않은 쇠고기 한 조각이나 겨자 한 방울, 치즈 부스러기, 덜 익은 감자 조각일지도 몰라. 자네가 무엇이든, 무덤보다는 고기 국물에 더 가까운 존재란 말일세!”

스크루지는 농담을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때도 마음속에 장난기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은 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고 공포를 누르려고 재치를 부려 본 것이었다. 망령의 목소리가 뼛속 골수까지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말없이 앉아서 저 고정된 유리 같은 눈을 잠깐이라도 바라보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망령이 자기만의 지옥 같은 기운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도 몹시 무서웠다. 스크루지 자신에게는 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랬다. 유령은 완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데도 머리카락과 옷자락과 술 장식은 화덕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을 쐬듯 계속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이 이쑤시개가 보이나?” 스크루지가 재빨리 다시 말을 걸었다. 방금 말한 이유도 있었고, 잠깐이라도 저 형상의 돌 같은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리고 싶기도 했다.

“보이네.” 유령이 대답했다.

“보고 있지는 않잖나.” 스크루지가 말했다.

“그래도 보이네.” 유령이 말했다.

“좋아!” 스크루지가 대꾸했다. “내가 이걸 삼키기만 하면, 남은 평생 내가 만들어 낸 도깨비 떼에게 시달릴 수도 있겠지. 허튼소리란 말일세. 허튼소리야!”

그러자 혼령은 무서운 비명을 지르고 사슬을 흔들었다. 어찌나 음산하고 끔찍한 소리가 났던지 스크루지는 기절해 쓰러지지 않으려고 의자를 꼭 붙들었다. 하지만 환영이 실내에서 두르기에는 너무 덥다는 듯 머리에 감은 붕대를 풀자 아래턱이 가슴 위로 떨어져 내렸을 때, 그 공포는 얼마나 더 커졌겠는가!

스크루지는 무릎을 꿇고 얼굴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자비를!” 스크루지가 말했다. “무서운 귀신이여, 왜 나를 괴롭히는가?”

“속세에 마음을 둔 자여!” 유령이 대꾸했다. “나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

“믿네.” 스크루지가 말했다. “믿을 수밖에 없네. 하지만 혼령들은 왜 이 땅을 떠돌며, 왜 나를 찾아오는가?”

“누구나 제 안의 혼령이 다른 사람들 사이로 나가 널리 돌아다녀야 하네.” 유령이 대답했다. “살아 있는 동안 그 혼령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죽은 뒤에 그렇게 하도록 선고받지. 세상을 떠돌아다니며—아아, 이 비참한 신세여!—이제는 함께할 수 없지만, 살아 있을 때라면 함께하여 행복으로 바꿀 수 있었던 일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운명이 되는 거야!”

망령은 다시 비명을 지르고 사슬을 흔들며 그림자 같은 두 손을 비틀었다.

“자네는 족쇄에 묶여 있군.” 스크루지가 떨면서 말했다. “왜 그런지 말해 주게.”

“살아 있을 때 내가 벼린 사슬을 차고 있네.” 유령이 대답했다. “고리 하나씩, 1야드씩 내가 만들었지. 내 자유로운 뜻으로 몸에 둘렀고, 내 자유로운 뜻으로 차고 다녔어. 이 모양이 자네 눈에는 낯선가?”

스크루지는 점점 더 심하게 떨었다.

“아니면,” 유령이 말을 이었다. “자네 자신이 짊어진 단단한 사슬의 무게와 길이를 알고 싶은가? 일곱 번째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써 이것만큼 무겁고 이것만큼 길었네. 그 뒤로도 자네는 계속 만들었지. 엄청나게 무거운 사슬일세!”

스크루지는 50패덤이나 60패덤쯤 되는 쇠사슬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을 것 같아 바닥을 휘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제이컵!” 스크루지가 애원했다. “제이컵 말리 영감, 더 말해 주게! 나를 위로해 주게, 제이컵!”

“내게는 줄 위로가 없네.” 유령이 대답했다. “위로는 다른 곳에서 와서, 다른 일꾼들을 통해,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네, 에비니저 스크루지. 나도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없네. 허락된 것은 아주 조금 더일 뿐이야. 나는 쉴 수 없고, 머무를 수 없고, 어디에도 지체할 수 없어. 내 혼령은 우리 회계 사무실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네—잘 듣게—살아 있을 때 내 혼령은 우리가 돈을 바꾸던 그 구멍의 비좁은 테두리 밖을 거닌 적이 없었어. 이제 내 앞에는 고된 여정들이 놓여 있네!”

스크루지는 생각에 잠길 때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버릇이 있었다. 유령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눈을 들지도, 무릎을 꿇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자네는 아주 느리게 다녔나 보군, 제이컵.” 스크루지가 겸손하고 공손하면서도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느리게!” 유령이 되풀이했다.

“죽은 지 7년.” 스크루지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동안 줄곧 돌아다녔나?”

“줄곧.” 유령이 말했다. “휴식도, 평안도 없이. 끊임없는 회한의 고문 속에서.”

“빨리 다니나?” 스크루지가 말했다.

“바람의 날개를 타고.” 유령이 대답했다.

“7년이면 굉장히 많은 땅을 지나왔겠군.” 스크루지가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유령은 또다시 비명을 지르고 사슬을 철컹거렸다. 죽은 듯 고요한 밤에 어찌나 끔찍한 소리를 냈던지 구 당국이 소란죄로 고발했더라도 정당했을 것이다.

“아아! 사로잡혀 결박당하고 두 겹의 쇠고랑에 갇힌 나여!” 환영이 외쳤다. “불멸의 존재들이 이 땅을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세월이 영원에 이를 만큼 흘러야만, 이 땅에 가능한 모든 선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니! 어떤 그리스도교의 혼령이든, 제게 주어진 작은 영역이 어디이든 그 안에서 선한 일을 한다면, 선을 행할 수 있는 길이 너무도 많아 유한한 삶이 너무도 짧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아무리 오래 후회해도 한 생에 주어진 기회를 잘못 쓴 일을 만회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니! 그런데도 나는 그런 자였어! 아아, 나는 그런 자였어!”

“하지만 자네는 늘 훌륭한 사업가였잖나, 제이컵.” 이제 그 말을 자신에게도 대입하기 시작한 스크루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업!” 유령이 다시 두 손을 비틀며 외쳤다. “인류가 내가 돌봐야 할 일이었네. 모두의 행복이 내 일이었어. 자선과 자비와 인내와 박애, 그 모든 것이 내 일이었네. 내 생업에서 하는 거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아우르는 광대한 바다에서 물 한 방울에 불과했어!”

유령은 팔을 쭉 뻗어 사슬을 들어 올렸다. 마치 그 사슬이 아무 소용도 없는 슬픔의 원인이기라도 한 듯했다. 그러고는 다시 바닥에 무겁게 내던졌다.

“해가 돌아 이맘때가 되면,” 망령이 말했다. “나는 가장 큰 고통을 겪네. 나는 왜 같은 인간들이 모인 무리 속을 눈을 내리깔고 걸었으며, 동방 박사들을 가난한 거처로 이끈 그 복된 별을 향해 한 번도 눈을 들지 않았을까? 그 빛이 나를 이끌어 줄 가난한 집은 없었단 말인가?”

망령이 이렇게 말을 이어 가자 스크루지는 몹시 당황하여 온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듣게!” 유령이 외쳤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거의 다 되었네.”

“듣겠네.” 스크루지가 말했다. “하지만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게! 말을 너무 꾸미지 말게, 제이컵! 제발!”

“내가 어떻게 자네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는 말해 줄 수 없네. 나는 보이지 않는 채로 자네 곁에 앉아 있던 날이 아주, 아주 많았어.”

달가운 생각은 아니었다. 스크루지는 몸을 떨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것도 내 속죄에서 결코 가벼운 몫이 아니네.” 유령이 말을 이었다. “오늘 밤 내가 온 것은 자네에게 아직 내 운명을 피할 기회와 희망이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야. 내가 마련해 준 기회와 희망이지, 에비니저.”

“자네는 늘 내게 좋은 친구였네.” 스크루지가 말했다. “고맙네!”

“자네는 세 혼령의 방문을 받게 될 걸세.” 유령이 다시 말했다.

스크루지의 얼굴은 조금 전 유령의 얼굴이 처진 것만큼이나 축 처졌다.

“그게 자네가 말한 기회와 희망인가, 제이컵?” 스크루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네.”

“나—나는 사양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스크루지가 말했다.

“그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유령이 말했다. “자네는 내가 걷는 길을 피할 희망이 없네. 내일 종이 한 시를 알릴 때 첫 번째를 기다리게.”

“한꺼번에 모두 만나고 끝내면 안 되겠나, 제이컵?” 스크루지가 넌지시 말했다.

“그다음 밤 같은 시각에 두 번째를 기다리게. 세 번째는 다시 그다음 밤, 열두 시를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의 울림이 멎을 때 올 걸세. 나를 다시 보리라고 생각하지 말게. 그리고 자네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꼭 기억하게!”

이 말을 마친 망령은 탁자에서 수건을 집어 전처럼 머리에 둘러 묶었다. 붕대가 턱을 끌어올려 맞붙이자 이가 딱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서 스크루지는 그것을 알았다. 용기를 내어 다시 눈을 들자, 초자연적인 방문객이 사슬을 팔에 둘러 감은 채 꼿꼿이 서서 마주 보고 있었다.

귀신은 스크루지에게서 뒷걸음질로 멀어졌다. 한 걸음 물러설 때마다 창문이 조금씩 저절로 올라가, 망령이 창가에 닿았을 때는 활짝 열려 있었다. 망령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자 스크루지는 다가갔다. 두 사람 사이가 두 걸음 안으로 좁혀지자 말리의 유령은 손을 들어 더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스크루지는 멈췄다.

말을 따랐다기보다는 놀라고 두려워서였다. 손이 올라가는 순간 허공에서 어지러운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탄식과 후회의 소리, 말로 다 할 수 없이 서글프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울음소리였다. 망령은 잠시 귀를 기울인 뒤 그 슬픈 애가에 합류하여 황량하고 어두운 밤 속으로 떠 나갔다.

스크루지는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창가로 따라갔다. 밖을 내다보았다.

허공에는 환영들이 가득했다. 쉬지 못하고 조급하게 이리저리 떠돌며 신음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말리의 유령처럼 사슬들을 차고 있었다. 몇몇은—죄를 지은 정부들일지도 모른다—서로 이어져 있었고, 자유로운 존재는 하나도 없었다. 살아 있을 때 스크루지가 직접 알았던 이들도 많았다. 흰 조끼를 입은 늙은 유령 하나와는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 그 유령의 발목에는 거대한 철제 금고가 달려 있었으며, 아래쪽 문간에 아기를 데리고 있는 가련한 여자를 보고도 도울 수 없어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그들 모두의 고통은 분명했다. 인간의 일에 끼어들어 좋은 일을 하고 싶지만, 그럴 힘을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그 존재들이 희미해져 안개가 된 것인지, 안개가 그들을 뒤덮은 것인지 스크루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혼령들의 목소리는 함께 사라졌고, 밤은 집으로 걸어왔을 때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스크루지는 창문을 닫고 유령이 들어온 문을 살펴보았다. 제 손으로 잠갔던 대로 두 번 잠겨 있었고, 빗장들도 그대로였다. “허튼소리!”라고 말하려 했지만 첫 음절에서 멈췄다. 겪어 낸 감정 때문인지, 하루의 피로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잠깐 엿본 탓인지, 유령의 지루한 이야기 때문인지, 시간이 늦어서인지, 몹시 쉬고 싶어진 스크루지는 옷도 벗지 않고 곧장 침대로 가서 그 즉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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