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남긴 것
Veronica Huber
제1장
우리 어머니는 토론토에서 굵은 검정 샤피로 짐 상자마다 표시를 해 두었다. 오스틴에 와 보니 그 말들은 농담이 되어 있었다. 주방 잡동사니. 책, 무거움. 겨울이라고 적힌 것도 하나 있었다. 그 상자는 트럭이 떠난 뒤로 라이트네 2가구 주택 앞쪽 방에 뜯지도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내용을 이미 아는 편지처럼.
상자들 때문에 집은 날마다 더 좁아졌다. 짐은 날씨처럼 저절로 풀리는 게 아니다. 직접 풀지 않으면 종이 상자가 바닥을 먹어 치운다. 엄마는 시에서 폭염 대응 계획을 세우느라 늦게까지 일했다. 어느 동네가 먼저 구워지는지, 시가 그 동네들에 뭘 해 줘야 하는지 알아내는 일이었다. 집에 돌아올 때는 차 안 냄새를 풍겼다. 나는 소파까지 갈 수 있도록 겨울 상자를 두 번 옮겼다. 새 삶에 내가 보탠 건 그게 전부였다.
첫날 밤, 엄마는 뒤쪽 침실 문간에 서서 말했다. “이 방 네가 써도 돼.” 내가 뭐 하나 보기도 전에 임대 계약서에 서명하고, 학교 서류를 제출하고, 내 짐 상자를 벽에 쌓아 놓은 뒤였다. 그게 나름의 친절이었다. 나는 나중에 방을 꾸미겠다고 했다. 나중은 뜯지 않은 상자가 한 줄로 늘어선 모습이 됐다. 오스틴도 이 2가구 주택도 내가 고를 수 없었다면, 적어도 방만큼은 나를 기다리게 할 수 있었다.
이 2가구 주택은 어디를 가려 해도 반대편에 있었다. 선라인 정류장은 집에서 3분 거리였고, 거기서 버스는 딱 내가 갈 일 없는 곳으로만 다녔다. 드라이 크리크를 건너, 그 개울 이름을 딴 학교를 지나, 사람들이 뭔가를 하기는 하는 모양인 동네까지 가려면 환승을 하든가, 누군가의 엄마에게 차를 얻어 타든가, 아직 끝나는 데 동의하지 않은 8월을 걸어서 뚫고 나갈 배짱이 있어야 했다.
나는 열여섯이었고, 드라이 크리크 고등학교에 다닌 지 일주일이었다. 누가 내게 부딪쳤을 때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무슨 범죄라도 자백한 사람 보듯 쳐다본다는 걸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교 종이 울린 뒤 콜더 버스 환승장에서 늦는 환승 버스를 기다리며, 달리 읽을 게 없어 기둥에 스테이플러로 박아 놓은 전단을 읽고 있었다.
리유즈 오스틴. 청소년 해체 작업반. 오늘 첫 모임.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누군가 손으로 그려 비뚤게 복사한 지도가 있었다. 환승장, 그 뒤편 배수로 부지, 북쪽으로 뻗어 메스키트 트레이스라고 적힌 직사각형에 닿는 점선. 직사각형 옆에는 같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걸어서 올 것. 제대로 된 신발을 신을 것.
제대로 된 신발은 신었고, 태워 줄 사람은 없었고, 엄마가 집에 오려면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그래서 걸어갔다.
배수로 길은 바닥이 콘크리트였고 접시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마지막으로 물이 흐른 한가운데 자리에만 녹조가 초록색 줄로 남아 있었고, 양쪽 둑에서는 메스키트 나무들이 안으로 기울어 있었다. 검은찌르레기들은 가는 내내 나한테 고함을 질렀다. 반쯤 가자 셔츠가 흠뻑 젖었다. 토론토에서는 2월에 코트 앞섶을 열고 댄포스를 달렸는데, 여기서 나는 다리 달린 젖은 종이봉투였다.
배수로 길은 수로를 벗어나 위로 올라가더니, 생각하다 만 채 버려진 주택단지로 이어졌다. 뒤에 집 한 채 없는 연석들. 잡초 속 소화전들. 한 번도 켜진 적 없는 가로등들. 유일하게 완성된 길 끝에는 크림색 외벽널을 대고 아랫도리에 돌 마감재를 두른 2층집이 서 있었다. 앞에는 갈색 잔디밭이 딸려 있었다. 누군가 잔디를 돌돌 풀어 깔아 놓고는 물값 내기를 그만둔 자리였다.
그 죽은 잔디밭에 금속 다리 두 개로 버틴 표지판이 서 있었는데, 누구에게 집을 팔겠다는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벨웨더 개발 — 부지 사용 금지 판정
재사용 허가: 해체 허가 기간 42일
42일 중 1일째
철거: 42일째
그 밑에는 낮 시간에만 작업이라고 빨간 글씨로 인쇄된 코팅 작업 일정표가 케이블 타이에 매달려 있었다. 노란빛이 벌써 모조 석재 위로 길게 뻗어 있었다. 이게 뭐든 내게 기회는 한 번뿐이었고, 해가 지면 끝이었다.
나는 주차 표지판을 읽듯 그 카운트다운을 읽었다. 그냥 집 하나에 붙은 숫자일 뿐이었다.
죽은 잔디 위에 애들이 열두 명쯤 서 있었다. 클립보드를 든 여자가 문간을 지키고 있었다. 콘크리트 문턱에는 갓 칠한 흰 선이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그어져 있었다. 자리를 잘못 잡은 출발선이었다.
나는 그 선을 넘었다.
“뒤로 물러나.” 여자가 말했다. 발밑을 조심하라고 할 때와 같은 말투였다.
나는 흰 선 뒤로 발을 뺐다.
“이름.”
“존 라이트요.”
“등록했어?”
“버스 환승장에서 전단을 봤어요.”
뭔가를 적었다. 마흔쯤 되어 보였고, 코는 스무 해째 같은 자리만 햇볕에 타 온 것처럼 벌겋게 타 있었다. 둘둘 감긴 빨간 테이프 한 롤이 권총처럼 허리띠에 걸려 있었다. 목에 건 명찰에는 아길라르 씨라고 적혀 있었다. 리유즈 오스틴, 등록 현장 감독이라고도 적혀 있었다.
“존 라이트, 도착.” 시간을 적더니 클립보드를 돌려 내게 보여 주었다. “현장 출입 대장. 몸이 들어가기 전에 이름부터 올라가야 해. 이름이 없으면 여기에 온 적이 없는 거야. 보험에서는 온 적 없는 사람은 다칠 수도 없다고 하거든.”
나는 서명했다. 글씨가 평소보다 더 엉망이었다.
“내가 안에 없으면 아무도 안에 들어가면 안 돼.” 그렇게 말하더니 이어 갔다. “공고된 낮 작업 시간이 끝난 뒤에도 아무도 안에 있으면 안 돼. 전기 없어, 수도 없어, 가스 없어. 도로 쪽에서 다 끊었고, 철거할 때까지 그대로 둘 거니까 스위치나 수도꼭지 찾아다니지 마. 여기는 모델하우스야. 가구는 들여놨지만 사람이 산 적은 없고, 너희가 죽치고 노는 곳이 되는 일도 없어. 여기서 자는 사람 없어. 여기서 생일 케이크 먹는 사람도 없어. 너희 아지트가 아니야.”
내 뒤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아길라르가 내 너머를 보자 멎었다.
“오마르는 들어 봤지.”
“여섯 번이요.” 잔디밭에서 단연 가장 키가 큰 오마르가 말했다. 열일곱쯤 되어 보였고, 뒷주머니에는 잊고 꽂아 둔 펜처럼 드럼스틱이 박혀 있었다. “해마다 더 좋아지네요.”
아길라르 씨가 둘둘 말린 캔버스 공구집을 건넸다. 안에는 드라이버 하나, 비트 두 개, 소켓 하나가 끼워진 짤막한 소켓 렌치가 들어 있었다. 소켓을 기록했다.
“네 앞으로 대여한 거야. 가기 전에 나한테 돌려줘야 해. 안 그러면 다시는 못 와. 마지막으로.” 허리띠의 빨간 테이프에 손을 얹었다. “이건 내 거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손대면 안 돼. 뭐든 빨간 표시가 붙으면 그건 더는 물건이 아니야. 구조체거나, 전기나 수도·가스에 연결돼 있거나, 벌써 망가져 가면서 무너질 핑계만 기다리는 거야. 자르거나 잡아당기거나, 괜찮은지 시험해 봐도 안 돼. 다른 걸 받치는 건 뭐든 그대로 둬.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먼저 나한테 보여 줘. 내가 된다 안 된다 정해. 안 된다고 하면 토 달지 마. 여긴 너무 덥고 내 인내심은 내 물보다 빨리 증발하니까.”
“누가 그냥 뭘 가져가면 어떻게 돼요?” 텍사스에 온 뒤로 내가 한 말 중 가장 긴 말이었다.
“그러면 벨웨더가 부지 출입 허가를 취소하고, 이 잔디 위에 서 있는 모두가 41일을 잃는 거야.” 그렇게 대답했다. “6월부터 여기 있던 애도 포함해서. 배낭에 뭘 넣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 누구한테서 훔치는 건지 알아 둬.”
아무도 웃지 않았다. 문 가까이 있던 여자애 하나가 스프링 노트에 샤프를 놀리고 있었는데, 글씨를 쓰는 건 아니었다. 앞벽을 떼어 낸 집을 그리고 있었다. 방이 모두 한꺼번에 보였고, 모든 것이 잘려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산은 이래.” 아길라르 씨가 말했다. “42일째 되는 날 이 마당에 기계가 들어와. 그러고 나면 이 주소에는 흙만 남아. 그때까지 반출 승인을 받은 건 남는 거고, 못 받은 건 없어지는 거야. 허가서가 하는 말이고, 허가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설득에 넘어간 적이 없어.”
안에서는 카펫 접착제와 달아오른 플라스틱 냄새에 쥐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났다. 바깥보다 더 더웠다. 공기가 통하지 않았고, 창문은 하나같이 닫혀 있었으며 계속 닫혀 있을 터였다.
사람들이 오기라도 할 것처럼 가구를 들여놓았다. 식탁 위 그릇에는 나무 사과. 책장에는 제목이 안쪽으로 향하게 꽂힌 책들. 수건은 그냥 둬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누군가 여기 가족이 사는 장면을 꾸며 놓고는 정작 가족은 보내지 않았고, 집은 전기가 끊긴 채 계속 기다렸다.
나는 주방으로 갔다. 사람들이 몰려 있지 않은 곳이 주방이었으니까.
뒤쪽 벽을 따라 늘어선 수납장은 나사가 벽 속 기둥까지 들어가 골조에 고정돼 있었으므로 더 볼 것도 없었다. 바닥 가운데, 아일랜드 조리대 너머에는 전시용 수납장 몸통이 따로 서 있었다. 문짝 종류를 보여 주려고 만든 가짜 수납장이었다. 제 받침발로 서서 어느 벽에도 닿지 않았고, 상판도, 다른 무엇도 떠받치지 않았다. 집의 일부인 척하는,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는 가구였다.
바깥쪽 끝 패널은 판판한 널빤지 한 장이었다. 앞면을 마감한, 나뭇결이 좋은 그 한 장이 수납장 한쪽 면 전체를 이루고 있었다. 빨간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몸을 낮춰 밑면을 들여다봤다.
내가 잘하는 게 딱 하나 있기는 하다. 이런 얘기 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짧게 끝내겠다. 나는 하라면 곧장 농담을 하거나 복도에서 딱 맞는 말을 꺼내지는 못한다. 방을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다른 방을 볼 수는 있다. 내가 여덟 살 때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가구를 방 한가운데로 밀어 놓고 있곤 했다. 소파가 문이랑 싸우고 있어서 둘을 말려 줬다고 했다.
그 패널의 체결재는 안쪽에서 박혀 수납장 틀 안에서 끝났다. 벽 속 기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수납장이라는 상자 말고는 아무 데도 박혀 있지 않았다.
나는 아길라르 씨를 찾아갔다.
“주방에 있는 전시용 수납장이요. 그 옆면요.”
말없이 따라왔다. 아길라르가 그럴 때는 부른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패널과 전면 틀이 만나는 이음새에 손가락을 대고 아래 끝까지 그었다. “겉판이에요. 나사는 수납장 몸통 안에서 끝나요. 수납장 몸통 위에는 상판이 없고, 벽에 고정돼 있지도 않고, 자체 뒷판이 있으니까 이 옆판이 상자를 붙들고 있는 게 아니에요. 옆판을 떼도 전시용 수납장은 그대로 서 있어요.”
“그게 갖고 싶은 이유는?”
“널빤지 한 장이고, 평평하고, 두 사람이 앉을 만큼 길어요.”
아길라르는 내가 불편해질 만큼 1초 더 나를 바라보더니, 허리띠에서 손전등을 꺼내 콘크리트 바닥에서 배관 통로가 올라오는 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배관 통로 쪽은 다 끊겼어.” 고개를 빼며 말했다. “벽에도, 수납장 안에도 살아 있는 설비 없어. 비구조 부재. 승인.”
웃음이 번져 속내를 들켰다.
“저기.” 절개 투시도를 그리던 여자애가 우리 뒤로 들어와 있었다. 재스민이었다. 이제는 샤프를 귀 뒤에 꽂고, 처음 보는 엔진을 살피는 정비공처럼 패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무늬목이야?”
“앞면은 마감돼 있어. 뒤는 나무 그대로고.”
“그럼 진짜 널빤지에 옷만 입혀 놓은 거네.”
“그런 셈이지.”
“그럼 이건 대가를 치르고 만든 거네.” 남몰래 하던 논쟁에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여기 물건 절반은 발포재야. 발포재 나르는 거 지긋지긋해.”
오마르가 고무 캐스터가 달린 납작한 철제 운반대 한쪽 끝을 들고 들어왔다. 바닥판은 온통 흠집투성이였고, 리유즈 오스틴이 스텐실로 두 번 찍혀 있었다. 먼저 찍은 글씨가 닳아 없어진 탓이었다. 화물 썰매였다. 오마르는 평생 가족의 평판 트럭에 짐을 실어 온 사람의 손길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썰매는 허가 기간이 끝나면 바퀴 수 그대로 돌아와야 해.” 오마르가 말했다. “선택 사항 아니야. 저 모서리 잡아.”
우리 셋이서 패널 밑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것도 밖으로 나르기 전에.” 아길라르 씨가 문간에서 휴대전화를 든 채 말했다. “시 폭염 대응실부터 확인할게.”
화면을 넘기는 동안 우리는 기다렸다.
“현재 발령된 경고는 없어. 무슨 뜻인지 알아 둬, 새로 온 애. 시에서 경고를 올리면 야외 운반은 그 자리에서 중지야. 루커리 안에서는 온종일 분류해도 돼. 거긴 숨을 쉬니까. 그땐 여기서는 짐을 든 채 한 발짝도 더 가면 안 돼.”
“우리 엄마가 그거 써요.” 말하겠다고 마음먹기도 전에 입에서 나왔다.
오마르가 고개를 들었다. “뭘 써?”
“폭염 경고. 시에서 내는 거.”
“아.” 그게 전부였지만, 그 한마디에 나는 아까보다 조금 더 방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나사를 풀어 뺐다. 위쪽 줄은 재스민이, 아래쪽 줄은 내가 맡았고, 오마르는 마지막 나사를 뺄 때 패널이 비뚤어져 빠지지 않도록 앞면에 두 손바닥을 납작하게 붙이고 있었다. 마지막 나사가 풀렸다. 패널이 틀에서 미끄러져 나와 우리 팔에 안겼고, 우리는 낑낑대며 썰매 바닥판에 내려놓았다.
우리 뒤의 수납장 몸통은 속을 드러낸 채 여전히 서 있었고, 여전히 반듯했고, 그저 옆면 하나만 없었다.
우리는 썰매를 굴려 넓은 거실을 가로질렀다. 캐스터가 가짜 나무 바닥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나무 사과가 담긴 그릇을 지나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아길라르 씨가 손을 들고 있었다.
작업 마감. 주방에 남은 빈 틀을 두 번 찍고 돌아와 손을 내밀었다.
“소켓.”
소켓을 내 이름이 있는 대장 기록과 대조하고 표시를 하나 한 다음, 공구집을 통에 떨어뜨려 넣고 바닥을 가리켰다.
패널은 앞쪽 끝이 흰 선에 2인치쯤 못 미친 채 썰매 위에 놓여 있었고, 아길라르는 꼼짝하지 않았다.
“네 거 아니야.” 아길라르가 말했다.
“알아요.”
“모르니까 잘 들어. 그 널빤지는 벨웨더 땅 위에 있는 동안은 벨웨더 개발의 널빤지야. 반출표 없이 저 문 밖으로 들고 나가면 도난품을 들고 이 부지를 떠나는 거고, 허가 기간이 취소되면서 내가 말한 일이 다 벌어져. 재스민과 오마르한테도 똑같이.”
재스민은 노트를 다시 펼쳐 둔 채 썰매를 그리고 있었다.
“저 흰 선이 우리가 하는 일의 전부야.” 아길라르 씨가 말했다.
패널 맨 앞쪽이 흰 선 안쪽 가장자리에 실제로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다음 조끼에서 번호표를 꺼내 뭔가를 적고, 썰매 고정쇠에 꿰어 널빤지를 둘러 묶었다.
반출표 001.
“이제.” 그렇게 말하고 문간에서 비켜섰다.
우리는 당겼다. 캐스터 바퀴 두 개가 한꺼번에 문턱을 쿵 넘어갔고, 그 충격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썰매는 진입로가 들어섰을 자리에 자갈을 깔아 놓은 앞쪽 바닥 공간으로 나왔다. 검은찌르레기들이 여전히 떠들어 대는 가운데, 하루의 마지막 주황빛이 납작하게 깔린 곳이었다.
죽은 잔디밭에 있던 애들 예닐곱이 박수를 쳤다. 정말로 박수를 쳤다. 수납장 조각 하나를 두고.
나는 널빤지에 손을 얹었다. 집 안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럼 이게 제 거네요.” 내가 말했다.
“아니.” 아길라르 씨는 벌써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건 작업반 거야. 반출표가 선을 넘으면서 관리 책임이 넘어왔고, 찾아낸 애 한 명이 아니라 너희 모두에게 한꺼번에 넘어온 거야. 공고된 회의에서 기록에 남는 전원 합의로 용도가 배정될 때까지는 계속 모두의 것으로 남아.”
“전원 합의라는 건요?”
“의결권이 있는 구성원 전원이 회의를 열기 전에 출석 서명을 하고, 검토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찬성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뜻이야. 한 명이라도 반대하거나, 한 명이라도 기권하거나, 한 명이라도 전화 받으러 나가면 전원 합의는 없어. 배정도 없어.” 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투표 안 해. 너희가 결정하는 자리에 입회해서 뭘 결정했는지 적는 거야. 그게 이 일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라는 점은 기록에 남겨 두고 싶네.”
찾은 것도, 떼어 낸 것도, 나른 것도 나였는데, 그 널빤지에 대한 내 몫은 연석에서 게토레이를 마시던, 만나 본 적도 없는 애의 몫과 정확히 같았다.
어른스러운 말로는 공평함이라고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새로 온 애가 됐을 뿐이었다. 요즘 많이 연습해 온 일이었다.
썰매가 미처 멈추기도 전에 논쟁이 시작됐다.
“홈커밍.” 서맨사 와그너가 빠르게 다가와 말했다. 클립보드를 끼고 여섯 가지 일을 굴리며 이 대화에 쓸 시간까지 이미 계산해 둔 사람의 기세였다. “내 말 좀 들어 봐. 첫 반출 승인 자재잖아. 드라이 크리크 학생 공용 공간 벽에 설명판이랑 걸면 지금부터 경기 날까지 전교생이 매일 지나가며 보게 돼. 이번 허가 기간에 꺼내는 다른 자재는 그런 주목 못 받아.”
“보이기는 하겠지.” 오마르가 말했다. “앉지는 못하고. 버스 정류장에 놔. 선라인에 뭐 있는 줄 알아? 기둥 하나야. 8월에 사람들이 아기를 안고 그 기둥 옆에 서 있는데, 아기를 내려놓을 데가 없어.”
“아무도 사진 안 찍는 정류장에 벤치를 놓자고.”
“그 정류장 사람들은 사진 찍히려고 거기 있는 게 아니야, 샘.”
“어디로 가든.” 재스민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뭘 대가로 치렀는지는 보일 수 있어야 해. 나사 구멍은 사포질로 없애지 마. 마감 안 한 면에 페인트칠도 하지 말고. 누군가 진짜 나무 한 그루로 가짜 주방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누가 물 한 번 끓이기도 전에 철거 판정을 내린 거잖아. 그런데 우리가 예쁘게 만들어 버리면 아무도 배우는 게 없어.” 재스민은 노트를 돌려 보여 주었다. 패널의 분해도가 그려져 있었다. 표면과 심재, 수납장 몸통에서 끝나던 작은 나사들이 원래 자리에 떠 있었다.
눈에 띌 것, 쓸모가 있을 것, 정직할 것. 아무래도 셋 중 둘을 고르라는 모양이었다.
나는 썰매 옆에 쪼그려 앉아 널빤지에 손바닥을 납작하게 붙이고, 내가 할 줄 아는 그 일을 했다.
“세 조각으로 자르는 거야.” 내가 말했다. “긴 조각은 좌판. 짧은 두 조각은 반턱맞춤으로 엇갈려 끼워서 다리로 쓰고, 나사 구멍은 바깥으로 내서 셀 수 있게 해. 두 사람이 앉으니까 기념물이 아니라 벤치가 되는 거지. 학교 벽에 붙여 놓을 수도 있고 선라인 기둥 아래에도 들어가. 어디에 놓는다고 다른 물건이 되진 않아. 좌판 밑은 마감 안 한 면이 위로 오게 두고. 거기 앉아서 내려다보면 누구든 뭘로 만들었는지 볼 수 있어.”
딱 1초 동안은 검은찌르레기들만 대답했다.
“그거 그려 봐.” 재스민이 샤프를 건넸다.
나는 출석 서명지 뒷면에 어설프게 그렸다. 재스민은 9초쯤 만에 제대로 다시 그렸다. 샤프를 내밀더니 내가 손을 뻗자 놓아주지 않았다.
“다음 작업 시간에도 오는 거지?”
“우리 어머니가 서명해 주면.”
“서명 받아 와.”
재스민이 샤프를 놓아주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도 샤프는 내가 갖고 있었다.
오마르는 다리 사이에 가로 버팀대를 넣지 않으면 좌우로 흔들릴 거라고 했고, 서맨사는 학교에 놓을 거면 제작 주간 전에 가져다 놔야 한다고 했다. 아길라르 씨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아직은 어느 것도 확정된 게 아니었다.
반출표 001은 화물 썰매 위에 놓여 있었다. 번호는 있었고, 목적지는 없었다.
“배정은 공고된 회의에서 해.” 아길라르 씨가 말했다. “오늘은 아니야. 오늘 너희는 집보다 오래 남을 물건 하나를 꺼냈어. 그 정도면 첫날이지.”
해가 울타리 선에 걸렸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시계에 맞춰 작업 시간이 한순간에 끝났다.
탁자에서 청소년 작업반 명부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아길라르가 종이 한 장을 밀어 주었다.
“보호자 서명. 서명 받아서 다시 가져와. 안 그러면 넌 방문객이고, 방문객은 잔디 위에 서 있어야 해.”
손땀에 종이가 젖지 않도록 양식을 돌돌 말아 주먹에 쥔 채, 마지막 남은 빛 속에서 배수로 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환승 버스를 타고 2가구 주택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요리하지 않는 집 냄새가 났다. 엄마 차는 아직 주차 자리에 없었다. 나는 겨울 상자를 소파에서 치우고, 양식을 눈에 띄도록 조리대 위에 놓았다. 조리대 끝선에 반듯하게 맞춰. 이미 싸워서라도 지키기로 마음먹은 물건을 내려놓듯.
남은 날은 마흔하루, 그리고 모두의 것이 된 널빤지 한 장.




